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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사수하라 (딤후 0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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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는 나이가 어리고, 또한 약하며, 수줍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에게는 인간적인 약점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디모데를 택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약점을 가진 사람을 택하여 자기를 위한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맡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디모데 후서를 읽어보면 매장마다 강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1장에서는 복음을 지키라고 하며, 2장에서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3장에서는 복음 안에서 행하라 하며, 4장에서는 어느 편에 치우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에 대한 의무는 무엇입니까?

(1)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딤후 1:11에서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느니라" 하였듯이 사도들은 복음을 형성하여 교회에 남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결정적 형태를 알려면 신약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들의 신앙은 어느 시대와 교회를 막론하고 신앙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사도들이 전해준 신약 성서 외에는 다른 새로운 복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잘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2) 이 복음을 순수하게 잘 지키는 것입니다. 딤후 1:14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한 것 같이 행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로부터 아름다운 복음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받은 것을 잘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어로 「파라데케」는 보물을 잘 간수하듯 지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세속주의 사상에서부터 잘 지켜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무신론에서도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도적질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에서부터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속함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합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우리에게서 이 보배를 빼앗아 가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신들이 설 곳이 없어지고, 심판당할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보배를 빼앗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에게는 이 복음을 충성스러이 지키고, 또 전할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면류관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을 지키지 못하고 상실하거나 배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다른 사상을 받아들여 사도 바울을 배척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향상될 때에 목회자를 보면 반가워하고 기뻐하지만, 믿음이 식어지거나 시험에 들면 교역자를 만나는 것을 기피하거나 싫어합니다. 그러다가 교역자를 배신하게 됩니다. 내가 언제 너를 알았느냐 싶듯이 외면하고 적대시하기도 합니다. 이는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적인 신앙을 가졌을 때는 그리스도와 바울을 사랑하다가 그들의 신앙이 변절되자 바울을 배척했던 것과 같습니다. 벧전 4:17-18에 보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하였습니다. 그런즉 두렵건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하고, 신앙 가운데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본문에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켈로와 허모게네 두 사람은 이곳에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인지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사도 바울을 배신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 잘 따르며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사도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단히 섭섭해 하였지만, 이것은 자신을 떠나 배신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구원의 길에서 떠났기 때문에 더 섭섭해 한 것입니다. 근래에 본 교회와 교역자와 복음을 떠나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섭섭하고 불쌍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두 사람도 사도 바울을 떠나 다른 길로 갔던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는 어두운 미래만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들과 같은 처지에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오네시보로 아시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버렸지만 오네시보로는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서 신앙을 견뎠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 교인으로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도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봉사하였고, 바울의 로마 옥중생활에도 함께 참예하여 열심으로 바울에게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물질 뿐만 아니라 성심성의껏 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를 잊지 못하는 중에 그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긍휼하심이 풍성하도록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동일한 위치에서 출발하였지만 도중에 변하여 하나는 축복의 위치에, 하나는 멸망의 길에 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축복이 임하고, 복음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 다른 길로 간 사람은 멸망의 자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 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잘 지키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복음을 잘 지키고 복음 받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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