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 자신을 돌이키라 (딤후 03:6-9)

첨부 1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와 도덕이 결혼한 것보다 이혼한 적이 더 많이 있습니다. B.C 7세기나 8세기 경에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선지자들의 경고를 통하여 종교와 도덕이 이혼한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때만 하더라도 종교적 기운이 일어난 것은 불의가 성할 때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사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중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 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 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불의와 부도덕 속에 사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진실이 없는 신앙생활. 도덕 없는 종교, 실천 없는 믿음 등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생활들을 미워하십니다. 참 종교는 경건의 형식과 능력의 결합입니다. 형식 없는 능력과 능력 없는 형식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1. 은밀하게 비공개적으로 짓는 죄 6-7절에서 "저희 중에 남의 집에 조용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죄는 슬금슬금 들어옵니다. 은밀한 가운데 침투해 들어옵니다. 특히 부인들에게 집중하여 유혹을 합니다. 인류의 조상을 유혹할 때도 사탄은 여자부터 꾀어 범죄케 하였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여호와 증인들이 하는 것을 보면 사탄과 동일하게 먼저 유부녀들을 미혹케 하여 기성 교회를 불신하게 만듭니다. 부인들은 도덕적으로 약할 뿐만 아니라 지성적으로도 나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유혹이나 달콤한 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 약점을 이용하여 여호와 증인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미혹하고 있으니 특별히 조심하여야 합니다. 본문 8절에 기록된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다고 하였는데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출애굽 당시 바로 궁중의 우두머리 마술사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주 간교하게 모세를 대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들처럼 간교하게 진리를 왜곡하여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들에 대하여 삼가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성이 부패해지고 믿음의 낙오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모세에게 대항하다 멸망한 얀네와 얌브레처럼 그들의 모든 사상도 사람들 앞에 밝히 드러날 것 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숨겨진 것들이 많이 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모든 것이 그 앞에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 너 자신을 돌이리라 말세에 일어나는 범죄는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마음이 혼란하고 쉽게 좌절되어 무가치하며 혼돈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 을 잊기 위하여 술과 마약에 물들어 문란한 생활을 영위합니다. 즉 이런 방식으로 현실을 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많은 범죄자들은 예전과는 달리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너무나 주관적이며 이기적으로 진리를 파악하고 자신의 안일과 쾌락만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어떠한 사실이나 상황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만을 생각합니다. 이들 은 너무나 주관적이기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합니다. 또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절대적 진리란 없고, 오직 상황에 따르는 상대적 진리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육철학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그와 같은 진리에 대한 경험을 갖게 인내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모든 젊은이들에게 비관적인 사회관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성세대와는 이해하기 힘든 세대차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와 손자간에도 서로 대화가 통하여 서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나눌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고사하고 형과 동생사이도 세대차로 인하여 서 로 대화가 원활하지 못한 심각한 대화의 단절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젊은 세대를 분류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급진적인 사람으로서 혁명이나 봉기를 통한 개혁을 요구합니다. 둘째, 이상주의자들로서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이 사회를 병든 것으로 보고 부정과 부패, 불신과 가난이 가득한 사회라고 지탄합니다. 세째,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잘못이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다만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 전가에 급급한 형편입니다. 정부는 사회나 학생들을, 사장은 정치나 고용인을 비난합니다. 네째, 무관심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될 대로 되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살아보려는 악착같은 마음도, 노력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잘못과 비리만을 들추어 비난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성장하면서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도 이 사회의 풍토와 타협하고 올바르던 생각들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회는 더 고질적인 병폐 속에 망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간의 관계를 되찾고 책임적인 사람들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이 사회는 보다 명랑하고 건전하게 변화해 갈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과 사명감을 가진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맡은 일을 하다가 옥에 갇혔지만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기쁨인 것을 깨닫게 되리하여 그는 "기뻐하고 기뻐하고 기뻐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기쁨 외에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난하게 살고 감옥에서 생활한다 하여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위선적인 일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들의 부모는 정직과 근면을 가르치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위선적인 행동만을 볼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도 그러한 삶 속에 빠져 들어가 생활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무엇이 바른 길인지 알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알려주려고 하여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참견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싫어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은 반드시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인생의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의무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난하여 가는 자들이 적으나 멸망의 길은 넓어 찾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앨버트 케무스는 "사람이 의미를 상실하고는 살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옮은 말입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비인간화라는 것은 인간의 의미를 상실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느 대학에서 인간의 죽음이나 고통, 운명, 죄, 미래의 실존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아마 못 보았을 것입니다. 현대 교육은 이런 심각한 질문들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에 대하여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에 대하여, 미래의 생에 대하여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 지식이 대답해 주지 못하는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해, 또 무엇 때문에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알고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즉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둘째, 사람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세째, 지상의 문제입니다. 나와 세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물질적인 문제,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네째, 죄의 문제입니다. 죄란 무엇이며. 왜 나에게는 죄의 본질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며, 주님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섯째. 죽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왜 죽어야만 하는가? 죽은 다음에는 우리의 삶이 어떠한가? 죽음 이후의 부활은 정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답변하자면 성경을 읽고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지혜의 영인 성령을 통하여 분명하게 깨닫게 하실 뿐더러 몸소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이런 사역에 참여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