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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구원 (히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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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 살기를 원합니다. 살기위하여 일하고 살기위하여 먹고 살기 위하여 싸움까지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먹으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먹기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 먹기를 위하여서 일하다가 석탄광과 기계공장에서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국제간에 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싸움을 부절히 하므로 살려고 하는 여러 가지 시도 때문에 죽음을 이루어 가련한 과부와 불쌍한 고아만 낼 따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먹음으로 사람은 늙고 먹는 밥 그릇 수가 많을수록 죽을 날은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함 석헌 옹은 장수와 건강의 비결이 1일 1식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이로 보건데 생의 문제가 먹고 마시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풍한설 추운 겨울날에 동구 거리에서 의복이 없이 흰 누더기를 허리에 걸치고 오들 오들 떨고 섰는 사람을 볼 때 어느 누가 긍휼한 맘으로 더운 옷 한 벌을 준다면 그 사람은 매우 고마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복이 그를 영원히 구원치는 못할 것입니다. 홍포와 고운 베옷을 입은 부자는 그것으로 날마다 즐겁게 살지만 오히려 죄 위에 죄를 더하여 마침내 음부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는 주님의 비유 말씀이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인간 사회를 보건데 옷 잘 입은 남녀들이 오직 자신들의 쾌락만 추구하고 죄 짓는 일에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봅니다. 그러나 결코 해어진 의복으로는 죄를 가리 우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성도로서의 아름다운 행실의 세마포를 입어야 영생하는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구원을 세상 사람들은 마치 불필요한 장애물처럼 생각하거나 무해무득한 사치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서 건짐 받는 일이 불필요하다거나 무해무득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죄에 빠진 사람이 죄에서 건짐 받는 일을 불필요한 일 이라고 할 수 없으며 무해무득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 예일대학의 예배시간에는 강단에 빈자리가 많이 보이지만 인도인 요가 사범이 와서 요가를 강의하는 날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강당에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요가는 필요하게 생각하나 구원은 필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증거일 것입니다. 병을 고친다는 신유집회는 인산인해를 이루나 사경회나 기도회에는 별 흥미를 갖지 않는 교인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구원을 값싼 물건처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큰 망상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자입니다. 죽음은 분리를 말하므로 인간은 허물과 죄로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자신을 쉽게 살려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결코 구원은 이렇게 우리 힘으로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길은 이 길뿐인데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은 수양이나 교양의 인위적 방법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여기 물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정경을 보고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인정 많은 사람이 와서 저의 젖은 옷을 보고 생각하기를 의복이 젖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하며 화려한 의복을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한다든지 얼마나 배가 고플까 동정하며 진수성찬을 차리며 먹으라 한다든지 또는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자를 던져주면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서 스스로 나오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물에 빠진 자에게 의복과 음식과 수영치는 학술은 물에서 구원받은 이후의 일이요 지금은 물에서 구원받는 길만이 최선입니다.

2. 어디서 구원을 받아야겠습니까?

(1) 악습에서 구원 받아야 합니다. 살전 5:22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라 하였습니다. 습관은 제 2천성이라니 습관이라는 것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은 일상생활에 접촉되는 감화에 따라 그 성행과 인격을 변화케 하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습관에 젖으면 평생 악습에 매여 살게 됩니다. 그 일례로 알콜, 담배, 아편 등에 습관이 들면 학자나 고관이나 장군이나 별수 없이 노예의 생활이 되고 맙니다. 옛날 충남 부여군 규암이라는 곳의 양 선삼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술망나니였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마신 술을 60세가 넘도록 마시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곱게 깨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반드시 관계없는 시비를 가로 맡아 가지고 구타를 하고 싸움을 하여야 속이 시원하여 잠이 온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부친의 제삿날이 되었는데 여전히 술에 만취가 되어 들판을 지나가다가 그냥 쓰러져 자게 되었습니다. 깨어보니 하늘에 별들이 총총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옷이 진창에 빠져 엉망이었습니다. 부친의 제삿날에 이 꼴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느 다정한 친구에게 가서 술을 다시 안 마신다고 맹세하고 옷을 한 벌 얻어 입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술을 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을 모색했더니 어느 누가 말하기를 홀아비의 10년이 넘는 망건을 구하여 태워서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하므로 이 말을 곧이듣고 실행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후로 계속 여러 가지 좋다는 방법을 써 보았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술 끊는 것을 포기했는데 하루는 귀한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교회 나가서 예수를 믿으면 술이 끊어진다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나이든 양씨가 교회에 온 것은 예수를 믿으러 온 것이 아니라 술주정하러 온 줄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면 피하기만 하고 예배 도중에 무슨 사고라도 일으키지 않을까하고 조바심을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후에 양씨는 강대상 앞에 나와서 “나는 이제부터 예수를 믿기로 결심합니다”고 고백했습니다. 목사님은 처음에 믿지 못했으나 그가 1년 후에 세례를 받게 되고 어느덧 술을 끊게 되어 그 목사님은 그에게 집사 직분까지 주었습니다. 그는 후에 장로까지 되어 자기의 문중을 다 구원시키고 동네를 모두 복음화 시켰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가 악 습관과 술 담배 끊는 것을 목적한 바는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참 생명을 얻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세상의 악 습관에서까지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범죄의 고통에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을 김 대두라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사형수로서 감방 안에서 예수를 믿게 되어 사형집행 시에 “감사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진작 예수 못 믿은 것이 한스럽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주로 믿어 참 평안과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3) 질병에서 구원 얻게 됩니다. 약 5:15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오늘날까지 무당들이 병을 치료한다하고 돌아다니며 무식한 행동을 하다가 인명을 상하게 하는 일도 있고 금전을 갈취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신유라 하면 일종의 미신으로 생각하는 자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육신도 지으셨으니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육체를 병에서 구원시킴은 당연한 일입니다. 신유의 은사는 믿을만한 일입니다. 주님 당시의 사도 시대에도 있었던 신유의 은사가 오늘도 있을 것이니 믿고 기도하여 질병에서 구원받기를 기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큰 구원을 입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노아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시대의 사람은 다 홍수로 멸망을 받았습니다. 롯의 권면을 경히 여기던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 가운데서 멸망되었습니다. 고후 6:2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은혜의 때가 지나가고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큰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요 3:3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못한 자는 속히 회개하고 중생하고 성결하지 못한 자는 성결하여 장차 나타날 은혜를 바라고 기다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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