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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당하신 예수 (히 0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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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서에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하고 인불학(人不學)이면 불성의(不成義)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그릇의 완성이나 사람의 인격의 완성이나 다 고난을 지나야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좋은 그릇이 되고 고난을 많이 받을수록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완전한 인격을 이룬 사람이 없고 고난 없이 사업에 성공한 인물이 없음은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영광을 누린 한 분에 촛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곧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1. 고난의 사실

(1) 사람이 되신 것이 고난의 첫 단계입니다. 신자는 누구보다도 도성인신이신 예수이심을 믿어야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엄청난 고난입니다. 영광 중에 계신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기 위해 썩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은 분명 고난의 첫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를 알지 못할 뿐더러 근본적으로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죄악의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으니 어찌 고난의 길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신 것은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생과 고난을 체험하고 인간의 죄악을 대속할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롬 8:18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의 세계와 현세의 고난의 세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그 영광의 자리를 버리고 고난의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자처하신 것이요 인간을 사랑해서 당하신 고난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시지 않으시고 고난 없는 형체로 세상에 오셨다면 주님은 우리 인간과는 완연히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며 그러한 연유로 해서 아마도 우리에게 구세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2) 천사보다 잠간 낮아지심이 고난의 둘째 단계입니다. 주님께서 천사보다 낮아졌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신 사실을 다시 긍정하는 말로서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사 인간고를 체험하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육하심은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고를 체험해서 고생하는 자를 위하시고 죄인을 구속키 위한 역사입니다. 천사는 사람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내려온바 없지마는 예수는 사람으로 고난당했으며 천사는 어느 때에 능욕을 당한 바 없지마는 예수는 능욕과 후욕을 당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고난이요 이것이 잠간 동안 예수를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도성인신하시고 천사보다 잠간 못하게 되신 예수님께서 최후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여기서 고난의 죽음이란 이렇게 십자가에 운명하신 순간을 가리킨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당한 온갖 고난을 포함해서 가리킨 것입니다. 죽음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 중에 제일 큰 고통일 것입니다. 병상에서 고통의 비명을 부르며 죽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데 십자가 위에서 받은 사죄의 죽음이야말로 얼마나 큰 고통이며 고난이겠습니까? 로마에서 사형 도구로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큰 고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형은 주님에게 가장 큰 고통이요 고난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셨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도 아니하시고 이 극형의 고난까지 감수하셨습니다.

2. 완전케 된 사실

(1) 고난 속에서 인격적으로 완전케 되셨습니다.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도성인신하사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고 실패한 자처럼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셨으나 십자가로서 주님은 완전한 인격을 조성하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시지 않으시고 천사보다 조금 못하시게 강세하는 것이 없었고 십자가의 고초가 없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격은 보존하였을지 모르나 세인의 구주로는 그 인격이 조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인내와 함께 큰 승리를 가져 왔습니다. 히 12:2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임을 손수 보이셨습니다.

(2) 사업적으로 완전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심이라하시고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하시고 병을 고치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심은 죄인을 구원코자 함이니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의 뜻입니다. 그래서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이요 예수는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 된 것입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둘째는 헬라인에게 (롬 1:16)였습니다. 진실로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힘으로써 온 세계 인류를 구원하시기에 넉넉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외치시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운명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의 모든 역사는 고난으로써 완전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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