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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도성인신하신 목적 (히 0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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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3:1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진실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목적이 있습니다. 물 위에 떠 바람 부는 대로 밀리어 다니는 부평초는 목적이 없는 것 같지마는 그것도 반드시 목적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처럼 모든 만물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께서 화육하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1.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없이 하려고 14절에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예수님께서 혈육에 함께 속함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같은 혈육을 입은 인간이 아니고서는 인간을 지도할 수 없고 죄인인 인간을 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화육하여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죄인을 대속하고자 스스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먼저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없이 하시려 한 것입니다. 원래 마귀는 천사였는데 범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죽은 자들입니다(벧후 2:4). 그 후 저들은 죄를 뿌려 인간에게 온갖 유혹을 하였습니다(창 3:1-5, 요일 3:8, 요 8:44). 보통 마귀는 사망의 권세를 잡은 존재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생사화복의 권세를 장악하며 주관한다는 뜻이 아니고 오직 죄의 삯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죽음으로 유도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박테리아가 썩히는 작용을 하지마는 생명을 가진 자는 썩히지 못하고 죽은 자를 썩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마귀는 죄의 삯으로 죽을 죄인에게 사망이란 것으로 형벌을 받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직 인생의 생명은 하나님만이 수관하십니다. 욥의 사실을 보아서도 사단은 욥에게 온 시험을 다 할 수 있으나 생명만은 건드리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서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멸하고 인생의 생명을 구원코자 하신 것입니다.

2. 사망의 공포에서 헤매이는 자를 놓아 주기 위하여 15절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맹수가 아닌 죽음입니다. 일생에 죽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 것이나 죽음은 일생 생활에서 공포성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병들어 앓기만 해도 죽을까 두려워하고 전쟁에서 포탄이 떨어질 때도 죽을까 무서워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인생들로 이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귀는 죄인들에게 죽음의 씨를 뿌리고 도성인신하신 주님은 인간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심으로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을 얻게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를 생명이시요 부활로 믿는 자는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가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여신도가 순교할 때 이것은 나와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망 권세를 잡은 마귀를 정복하고 사망 권세에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7:24-25게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고전 15:55-57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죄로 말미암는 사망에서 그리스도께서 구원해 주셨음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공포가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이런 삶은 사망에 매인 종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 죄의 멍에에서 우리를 놓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시어 오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자에게 이 사망의 공포를 제거하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고전 15:57).

3. 대제사장이 되고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입니다 17절에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죄인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시사 대제사장이 되지 않고서는 죄인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자격이 없는 것이니 도성인신하시사 사람이 되어 대제사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 5:1에 “대제사장 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사람을 위한 제사를 드릴 대제사장은 사람이어야 함을 보이신 말씀입니다. 딤전 2:5-6에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 20:28, 갈 1:4, 사 53:10에 그리스도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실 뿐 아니라 또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백성의 죄를 속하는 일이 임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시려고 그 백성과 같은 몸을 입으시고 그 백성 가운데 들어오셔서 (요 1:11)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제물까지 되시어서 대속죄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제사장입니까? 성경은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도성에서 불한당을 만난 사람을 보고 그저 지나간 제사장과 같은 분이 아니라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어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죄인을 위하여 물질과 시간과 생명을 희생하여 죄인을 구원해 주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의 풍성하신 은혜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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