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공의와 평화 (히 07:1-3)

첨부 1


히 7:2에 “그 이름을 번역하면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 구절을 통해 멜기세덱이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인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도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진영으로 대립되게 되었고 냉전과 열전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인류는 평화를 갈망합니다. 사실 평화에 대한 갈망은 오늘 뿐만 아니라 어떤 시대, 어떤 지방, 어떤 국가의 국민이라도 공통적인 것입니다. 즉 세계적으로 평화를 갈망하고 국내적으로도 평화를 갈망하고 우리 가정에서도 평화를 원하고 우리 마음속에도 평화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갈망한다고 반드시 평화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라는 것은 한 결과인데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이 조성되기 전에는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기상적으로 비가 올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비되어야 갈망하는 비가 내리는 것 같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이 준비되어야 이 세계에 평화가 올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 조건이란 공의요 정의입니다. 사 32:17에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평안과 안정이니라” 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평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먼저 의가 있어야 화평이 옵니다. 평안과 안정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먼저 의가 있어야 그 결과로 평안과 안전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시 85:10에는 “긍휼과 진리가 서로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라고 한 것입니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을 맞추는 것과 같이 언제든지 의와 화평은 같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 말씀에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또한 평강의 왕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멜기세덱의 다음 대를 이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의의 왕입니다. 그런 까닭에 또한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요 또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의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됩니다. 의가 없이 참된 평화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는 평화의 기초가 됩니다. 평화는 의의 터 위에만 건설될 수 있습니다. 불의의 터 위에 건설된 평화의 기구나 어떤 정권이나 어떤 제도는 모래 위에 세운 것 같아서 언제 넘어질런지 알 수 없고 그것은 화산 위에 세운 것 같아서 언제 화산이 폭발하여 없어질런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는 의의 왕으로 그리고 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평화를 말씀하시기 전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했습니다. 즉 평화는 의를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평화는 반드시 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의가 바리새 교인이나 서기관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시면서 어떻든지 의를 찾으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어떤 방면의 평화문제를 생각할 때에도 이 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려진 것은 확실히 세계 강대국들의 불의입니다. 한 조상의 자손으로서 한 혈통을 받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의복을 입고 같은 풍습을 가지고 사는 단일 민족을 강대한 국가들이 우리에게 아무 의논도 없이 우리 민족에게 민족 상쟁하게 만들고 많은 생명을 희생하게 만든 것은 정녕 불의입니다. 이와 같은 강대국들의 불의가 이 세상에서 시정되어서 공의가 이 땅에 실행되기 전에는 세계평화는 결국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독일의 동서 분단도 역시 불의한 일입니다. 이것 역시 강대국들의 불의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고난과 모든 불화가 어찌 강대국의 불의에만 한정될 것입니까? 모든 인간의 불의함으로 이 고난과 불화는 시 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의가 제거되지 않는 한 인간은 평화를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공의만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줄 압니다. 범위를 좁혀서 우리 국가의 안녕과 질서도, 우리 국내의 평화의 문제도 역시 이 공의의 법칙에 온전히 관계가 있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모든 국민이 공의를 행할 때만 우리에게 평화가 주어집니다. 국민은 당연히 국가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해야 될 것이고 공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행정 · 사법 · 입법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히 이 공의를 행하는데 꺼림이 없어야 합니다. 인물의 선정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가가 앞으로 발전되고 복을 받으려고 할 것이면 적재적소에 인물을 바로 등용해야 됩니다. 또한 국가적 입장에서 공의의 원칙 아래에서 인물을 등용하여야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 빽이니 사바사바니 이와 같은 말이 너무 자주 들리는 것은 우리 국가를 위해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 14:34에 “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나라를 흥하게 하는 한 가지 원리는 오직 공의를 시행하는 길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부르짖기를 “오직 공법을 물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공법을, 오직 정의를 우리 국가 어떤 기관, 어떤 단체, 어떤 사회, 어떤 기구 등에 물과 같이 하수같이 흐르게 할 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올 뿐더러 우리 자손만대에 큰 축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어떤 단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우리 교회라는 것도 작은 한 단체인데 이 교회의 평화는 공의에 의해서 모든 일이 처리될 때에만 옵니다. 학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모든 학교 행정이 공의에 의지해서 공법적으로 실행될 때에만 학교의 평화가 유지될 것입니다. 가정도 역시 그렇습니다. 가정에도 여러 식구가 살지만은 같은 자손일지라도 여러 자손 가운데 공의가 없으면 그 가정에 불평이 생깁니다. 아무리 한 아버지 어머니의 자손이라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데 공정하게 공의에 의지해서 사랑할 때에만 그 가정에 참된 평화가 옵니다. 우리 마음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의 평화도 의가 있어야 화평이 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 까닭에 우리의 생활에 불의가 있다면 제일 먼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불의한 길로 행하면 어떤 사람이 형벌을 내리기에 앞서서 제일 먼저 우리 마음이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 57:20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아내는 바다와 같으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평강을 허락치 않습니다. 악한 사람의 마음은 바다물결이 움직여서 바다 속에 있는 진흙과 검불이 솟구쳐 올라서 빙빙 도는 그런 바닷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그 마음에 안정이 없고 그 마음이 깨끗치 못하고 마음이 출렁거리고 밤에 잘 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음식의 맛이 없는 것이 바로 악한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첫째 형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화평을 얻으려고 하면 의의 길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의의 왕으로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기 전에는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누구든지 저를 믿는 사람은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양심이 맑아지고 깨끗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 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한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했습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 만 줄 수 있는 평안인데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주시고 그 후에 참된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역시 평강의 왕으로써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의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의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할 때 우리의 가정에 참된 평화가 올 것입니다. 우리 온 민족이 회개하고 의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우리 국가에 참된 평화가 올 것입니다. 아니 온 세계가 의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할 때에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올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의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고, 우리 가정에 영접하고 우리 국가에 영접하고 세계가 의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해서 참된 평화의 축복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