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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제사장과 새로운 길 (히 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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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제사장(11-20절) 고대 유대교가 목표했던 종교적 기본 이념은 “종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뜻으로 가까이 가는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 놓였던 것을 제거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벗으로 하나님과 교분을 갖게 하는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념을 실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율법에 순종할 것이요, 둘째는 제물을 바쳐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에 위반하는 죄를 범했을 때에 그것을 씻기 위하여 제물을 바치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로 놓였던 장애가 해소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사람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분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위반을 속죄하기 위한 레위의 제사 제도가 없다면 율법은 완전히 무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바치는 제사제도 그 자체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의 잃어버렸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 제도로서는 닫혔던 하나님께서 나가는 길을 열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 제사장직은 혈통적으로 아론의 자손이어야 하고 혈통이 올바른 자라도 142항의 규정 중에 어느 한 가지에라도 결함이 있으면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고(레 21:16-23) 그리고 제사장 취임의 의식도 레위기 8장에 기록된 것 같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 절차를 잠깐 살펴봅시다.

(1) 몸은 물론 정결케 씻어야 하고

(2) 네 종류의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은 무릎 밑에서 매는 아마포로 된 속옷과 한 조각으로 된 아마포의 겉옷과 흉패와 관입니다.

(3)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4) 오른쪽 귀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치려는 동물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이 모든 의식은 신체적인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성품이나 능력 또는 인격 같은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 되심은 신체적인 기반에 요소를 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그의 성품과 본질 그리고 그의 특질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으로 인한 제사는 불완전하고 예수를 인한 제사는 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모든 제사장이 레위족에 속하고 아론의 자손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최고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파괴되고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모든 제사나 의식에 관한 모든 규정이나 이에 속하는 사항은 낱낱이 예수라고 하는 제사장에 의해서 무효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장벽을 손수 헐었습니다. 그 장벽은 첫째, 두려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두려움을 갖는다면 참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따뜻한 사랑을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알았을 때 비로소 인간의 심한 두려움은 해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소원으로 삼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의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완전하신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죄는 극복되어 하나님께로 향한 길은 모두 인간에게 열려 있게 된 것입니다.

2. 보다 위대한 제사장(21-25절) 우선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일반적인 제사장과는 달라서 하나님과의 맹세로 되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용된 것은 시 110:4의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맹세하신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옛날에 필로(Philo)는 이 점을 지적해서 이것은 인간이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맹세할 필요가 없음을 말함입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께서는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인 제사장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 스스로가 유례없이 놀라운 사실로써 맹세하신 것인 고로 절대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로써 세워진 제사장이신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었던 것입니다만 여기에 쓰이고 있는 언약(Covenant)이라고 하는 단어는 두 사람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옛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란 것은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특이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 약속은 모세가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니 백성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함으로써 구체화된 것입니다. 이 언약은 율법의 준행에 기반을 두고 있어 율법을 어길 때마다 제사장이 제물을 바침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유한하고 진정한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였기에 새로이 하나님께서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방법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그 차이는 이런 것입니다. 옛 언약이 율법과 정의와 순종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하여 새 언약은 오직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바치신 희생의 제물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점입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인간이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만 새 언약은 인간들을 따뜻이 맞이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써만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옛 언약은 인간의 업적에 의존하고 있으나 새로운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새 언약의 보증이라는 말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보증이라는 말은 보증을 주는 자가 보증이 되는 사람 또는 보증인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은행 예금자의 보증인이 된 자는 예금자가 예금한 것 이상의 금액을 인출했을 때의 차액을 갚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며 죄인의 보증인이 되었을 때에는 죄수를 법정으로 출두시킬 의무를 가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를 새 언약의 보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죄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며 우리가 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를 대신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워져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이 율법을 준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따뜻하게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을 보증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쏟으신다는 것을 보증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것입니다. 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는 영원한 것이고 예수의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이며 그의 보증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나 또는 이후에 영원토록 인류의 봉사자로써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완전한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영원토록 하나님께 이끌기 위해서 문을 열고 계시며 영원토록 인류를 위해서 봉사를 계속하시는 위대한 제사장이십니다.

3. 우리가 바라는 대제사장(26-28절)

(1) 거룩하신 예수님이십니다. 행 2:27, 13:35, 계 15:14, 6:5, 딛 1:8의 말씀과 같이 최고의 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티 없이 깨끗한 선으로 예수는 나타나셨습니다.

(2) 악이 없는 예수님이십니다.

(3) 더러움이 없는 예수님이십니다.

(4) 죄인과는 구별되는 예수님이십니다.

(5) 하늘보다 높이 되신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요 우리가 바라는 대제사장임을 이상의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결국 여기에 기록한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또 다른 면을 소개하면서 제사장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 계의 제사장보다 훨씬 뛰어나신다는 점을 더 지적하고 있습니다. 레위계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자신도 역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계 대제사장은 자신이 죄 있는 사람으로서 죄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동물이라는 것을 통해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또 레위계의 대제사장이 율법에 의해서 임명된 데 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써 그 직분을 맡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고로 인간의 대제사장이 이행할 수 없는 역할을 완전히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길고도 복잡한 논법으로 예수께서 완전한 대제사장이 시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로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제물로써 자기 자신을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만이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유일한 길이 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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