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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3대 사실 (히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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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누구나 면치 못하는 것이 있으니 곧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는데 그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혹 염병, 고질은 면할 수 있어도 죽음을 면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혹 적군의 총탄, 폭탄을 피할 사람은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산다는 문제가 크다면 사후의 심판의 문제도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다는 문제에만 급급하되 사후의 심판의 문제에는 관심도 두지 않으니 이 시간 엄숙히 인생의 3대 사실을 깨달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롬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장에 사람들이 간음하는 여자 하나를 현장에서 잡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묻기를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엄숙한 얼굴로 선언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간음한 여인을 치려고 손에 돌을 잡은 모든 무리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모두 돌을 그 자리에 놓고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금세기 최대의 과학자 아인시타인 박사는 그가 쓴 글 중에서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단련하고 있는 모든 과학자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법관의 수기에 그가 제일 처음 사형언도를 내렸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날 밤에 밤새도록 술을 먹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에든버러의 위대한 의학자 심프슨 경은 수술할 때 클로로포름 마취제를 처음 발견하고 사용한 의사인데 누가 묻기를 “당신이 세상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이 제일로 큰 발견입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실이 제일 큰 발견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보건데 과학자도, 법관도, 의사도 다 죄의식을 가진 죄인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감옥에 들어가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옥에 있는 수감자나 그렇지 않은 자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구조, 사고방식, 언어행위 모든 일체가 죄 덩어리인 죄인들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사야는 사 6:5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국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1:15에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인생은 누구나 죽습니다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약 1:15에서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범죄 한 인간인고로 다 죽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하이덱거는 그래서 “우리 인생은 죽음에의 존재”라고 극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누구나 일정한 생의 기간을 마치면 한번은 죽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되고 노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걸어가는 고정선로입니다. 그런 까닭에 석가는 가비라성 궁중에서 왕자의 몸으로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인생의 허무를 느껴 인생의 생로병사를 고심하다가 입산수도한 것입니다. 어떤 현자는 인생이란 처음에는 네발로 다음에 두발로 마지막에 세발로 다니다가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병, 노쇠, 전쟁, 사고 등으로 죽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나 나도 20년 후나 30년 후나 혹 50년 후에는 결국 이 죽음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에드워드의 말같이 “누구나 인간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이라고 믿고 있고 자기는 죽음과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러면 인간의 이 한계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죽음에 대한준비는 단 한 가지인데 그것은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생각지 않는 어리석은 자를 가리켜 눅 12:20에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전 7:4에 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열락하는 집에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과대망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인 것을 홍안의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이 널 재촉하니 저 막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성경은 말하기를 인생은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잠깐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도 했습니다. 그림자와 같이 허무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종착역을 두고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 심판과 내세가 있습니다 심판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심판은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상선벌악의 제도가 있어 인과응보, 권선징악으로 공평하게 살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심판이 없겠습니까? 인생을 다만 죽는 것으로 종결짓는다면 인생에게 도덕적 관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법망에 걸리지만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인, 강간, 도적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살아서 행한 모든 언행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 12:14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심판이라는 말은 원래 “갈라 놓는다”는 뜻입니다. 곡식과 가라지, 양과 염소, 시비선악, 흑백, 청탁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공정하게, 확실하게 갈라서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십니다. 매우 분명하고 세밀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1)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고후 5:10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한 바를 혹 사람에게는 감출 수 있겠으나 하나님에게는 감출 수가 없습니다(시 139:1-3) 혹 오랜 후에는 자기의 행한 바를 자기도 잊어 버리는 수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내 죄를 내 눈 앞에 다 펴 놓습니다(시 50:21). 렘 17:1에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다”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행위와 죄상을 기록해 두되 아주 세밀하게 한점의 오차도 없이 해두는 것입니다. 마음 판에 새겼다는 말은 사람 편을 위한 기록이요 제단 뿔에 새겼다는 말은 하나님 편을 위한 기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과 사람 편을 위한 금강석 철필로 새겨놓은 행위록을 펴놓고 심사를 하는데 어찌 그 앞에서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2) 말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마 12:37-38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고, 시 137:4에는 “주께서 나의 입으로 한 말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하나님은 심판의 근거로 삼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 5:22에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였으니 말이란 아니할 수도 없고 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약 3:2에는 “사람에게 다 허물이 있으되 만일 말에 허물이 없으면 완전한 사람이라”고까지 말의 다스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마음에 생각한 것도 심판하십니다. 전 12:14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밀한 일에 대하여서도 심판하신다” 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모도, 처자도, 경찰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날 것이요 X-ray 앞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마음의 생각이 심판대 앞에 서면 여실히 폭로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행동으로 나타난 일만 상벌의 대상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생각한 것도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요 3:15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요”라고 했고, 마 5:28에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생각한 것도 범죄로 인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생각한 것을 심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차알스 피니는 법률공부를 하는 중에 고학을 했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차알스 피니가 어떤 노신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너는 법학으로 법률을 공부해서 무엇 하려느냐?” 그는 대답합니다. “돈을 벌지요.” 계속 대화가 됩니다. “돈을 벌어서 무엇 하려고?” “장가가고 좋은 주택을 갖고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지요.” “그 다음에는?” “은퇴하여 평안히 살지요.” “그 다음은?” “죽지요.” “그 다음은?” “공동묘지 가지요.” “그 다음 네 영혼은?” “심판 받지요.” “그 다음은?” “……” 더 이상 그는 그 노신사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는 바로 숲 속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자신을 위해서만 살려는 죄악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이후로 주님을 위해 한평생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후에 그는 능력을 얻어 수년간 줄곧 주의 종으로서 크게 일하였습니다. 인생은 한번 죽고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한 내세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내세란 천국과 지옥뿐입니다. 악인은 영벌 받고 의인은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마 25:46). 천국과 지옥은 양심이 증거하고, 역사가 증거하고, 성경이 증거하고, 주님께서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십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내세는 더욱 중요합니다. 확실한 내세관을 가지게 될 때 또한 이 세상은 내세에 들어갈 준비의 장소로써 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될 때 정말 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금세이지만 내세와 관련될 때는 필요불가결의 것이 됩니다. 존 웨슬리는 운명 시 의자에 앉은 채로 최후에 웃으면서 하는 말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된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기쁜 웃음을 가지면서 세상을 떠나게 했습니까? 그것은 확실한 내세관입니다. 주님께서 마 16:26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 사람은 한번 죽는다는 사실, 사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구원받을 길을 곧 찾으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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