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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키신 예수 (히 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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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자기의 뜻을 좇아 행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왕의 뜻을 잘 받드는 자를 충신이라 하고, 남편의 뜻을 잘 받드는 자를 열녀라고 합니다. 그래서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사이부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은 분이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찌기 예수를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완수하실 것을 현실시 하시고 하신 말씀인데 과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완수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자신의 가족개념까지도 변경시켰습니다. 어느 날 제자 중 한 사람이 와서 밖에 선생님의 어머니가 와서 기다린다고 했을 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이가 내 어머니요, 내 동생이요, 내 자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오묘하신 뜻에 복종하여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리고 도상에서 불한당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구원해 주지 못했음과 같이 구약의 모든 제사와 해마다 드리는 모든 제사는 사람의 죄를 속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수양, 수소의 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기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예수의 피의 제사를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요청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치 않고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잡아 번제물로 드리려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천사로 중지시키시고 준비했던 다른 짐승으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 준비했던 다른 짐승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네가 사랑하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게 주었으니 나도 내 사랑하는 독자를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했던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려는 십자가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상에서 그 고난을 다 당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과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모든 인간에게 참된 생명을 부여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영원한 참된 종교로써 많은 생명을 구원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소망이요 영원한 생명이 되셔서 오늘 뿐만 아니라 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로 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는 오는 세대, 오히려 세상 끝날까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음으로 온 세상을 다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12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란 말씀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원한 축복들을 보증해 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단번에 드리신 속죄의 영원한 제사의 공로였던 것입니다.

1. 주님은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분이십니다 해마다 동물의 피로 드리는 제사로는 사람이 자신의 매일 짓는 죄를 속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밀하신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 단번에 제사 드려 인류의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성인신하신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기에 앞서서 구약시대부터 예수님을 여러 번 예표로 보이셨습니다. 창 3:15의 뱀의 머리를 부술 “여인의 후손”이나, 창 12:3의 이삭의 대신이 된 “수양”이나, 출 12:3의 출애굽의 밤에 죽은 유월절 “양”, 그리고 모세 율법에 의하여 드려진 무수한 우양의 피가 모두 예수님의 제사를 예표 했던 것입니다. 히 10:14-18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나, 롬 8:1의 “이것을 사하였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고 한 것은 이 예표가 성취되었음을 말합니다.

2. 예수님으로 제사를 드린 신자의 생활 본문 19-20절에는 예수의 속죄를 믿는 신자의 새로운 모습이 표현되었습니다.

(1)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의 담대성 1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담력은 육체적 힘에 의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 힘입니다. 이 힘을 얻으려면 다윗과 같이 먼저 나의 머리털보다 많은 죄를 깨닫고 번민하다가(시 40:12) 하나님의 복음을 영혼의 귀로 들어야 합니다(시 40:6-8). 하나님은 우양의 제사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예비하신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시 110:1-5)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다윗의 귀에,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고 들려주시고 다윗의 눈(영혼의 눈)에 주의 우편에 계신 주를 보게 하신 이도 성령이었습니다. 이 성령은 지금도 신자들에게 성경과 영혼의 귀, 눈을 통하여 똑같은 사실을 들려주시고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2) 성소 안에서 사는 생활 예수의 속죄로 사는 신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새롭고 생기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만물과의 화목의 기초이며 이 화목에서 잃었던 생명은 다시 아름답고 힘찬 결실력을 가집니다. 아담 · 하와가 낙원에서 하나님과 화평 중에 지내는 동안에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 화평과 조화 그리고 생성의 축복이 넘치며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아담 · 하와가 하나님과의 화평을 상실했을 때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거리가 생기고, 사람과 다른 피조세계 사이에 상처가 생기고 급기야는 형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이는 비참한 타락의 세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한 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신자의 새 생활은 곧 타락 이전의 복되고 생명이 넘치는 생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3) 예수의 한 영원한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성소 안에 들어와 생활을 하는 신자는 날마다 새로 지음을 받아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 참된 자아실현의 길을 달려가게 됩니다. 그는 땅에서도 새 것을 창조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 날에 하나님의 신천 신지에서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한 영원한 제사의 이 복된 힘을 누구나 다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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