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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활용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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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3에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 제각기 크고 작은, 강하고 약한, 높고 낮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아예 없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큰일도 못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일은 모든 것이 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대할만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람된 삶을 살고 싶다는 그런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이 마음을 믿음에 적용시켜 실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자기 앞에 어떠한 난관과 장애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인류대학에 들어가고 말겠다는 뜨거운 소망을 가졌다면 그는 그 목표를 놓고 피어린 투쟁을 할 것입니다. 그 소망에 대한 믿음이 크면 클수록 실현 가능성은 정비례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 대학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적당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이 있으면 그는 바라는 믿음의 결과 내지는 그 이하의 성과밖에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비근한 신자의 예를 들어보면 어떤 교인은 말씀에 대한 갈급한 소망이 없고 말씀이 자신의 내부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올바른 신자가 되어 보겠다는 열망이 있는 사람은 말씀 자체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뜻 안에서 목적을 실현시켜 나가기 때문에 믿음이 큰 진보와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축복받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야곱은 어느 누구보다도 축복에 대한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축복을 얻기 위하여 많은 속임과 술책과 자기중심적인 행위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야곱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선조로 축복을 하셨습니다. 1) 야곱은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창 28:20-22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 주시며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이 서원 기도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려는 사람에게 바라는 가장 기쁜 기도였습니다. 2) 결사적 기도를 했습니다. 출 32:23-30절에 야곱은 주의 사자를 만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고 환도뼈가 위골될망정 주의 사자를 놓지 않고 씨름하므로 결국 축복을 쟁취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축복이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생명을 걸고 투쟁하는 자세가 축복의 사람으로써 지녀야 할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3)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교회와 내가 속한 구역, 내가 맡고 있는 기관이 부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바라는 마음은 기도와, 충성과, 자기가 속한 직분에 대한 감사와 성실성 위에서만 실현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있으니까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신앙은 교회 부흥을 막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신앙도 나태하고 타성에 젖게 만듭니다. 자기 교회에 대한 애착, 자기 직분에 대한 애착에 깊은 기도가 나오고 물질적인 충성의 마음이 솟아나며 남의 영혼에 사랑의 심정으로 전도하는 심정이 솟아나옵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실상을 그리고 활동해야 합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1) 요셉은 믿음으로 마음에 실상을 그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어려운 일, 억울한 일들을 당했으나 꿈을 기억하여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마음에 그렸기 때문에 믿음의 행진을 할 수 있었고 이로써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애굽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어 세계적인 흉년을 해결해 주고 주님과 민족을 위해 거창한 일을 했습니다. 2) 다니엘도 실상을 그렸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의 원칙을 세 가지로 정했습니다. 단 1:8-10절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 부귀에 미혹되지 않을 것. (나) 인정에 넘어가지 않을 것. (다) 생명의 위험이 올지라도 신앙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금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 같은 그림을 마음에 새겼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함을 만민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으로 이방의 한 나라가 구원을 받아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2) 믿음은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을 활용하려면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하신 것을 불순종하여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첫 아담은 불순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하나님에게 “예”만 있어 순종하므로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하여 기적적인 역사와 창조의 삶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2) 베드로도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진 못했습니다. 절망 가운데 지쳐있는 베드로에게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했습니다. 그는 어부로 쌓은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깊은데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줄 알았으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히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사 55:8-9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베드로는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3) 이삭 또한 위대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려 할 때 죽음을 사양치 않고 순종했습니다. 제단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도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이삭에게 축복하시되 한해 농사를 지으면 백배나 거두는 기적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물만 파면 생수가 나와 원수들 앞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명령하심은 순종을 보시고 되돌려 주실 뿐만 아니라 축복을 아울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순종은 기적과 축복을 낳은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활용자가 되려면 1) 예수의 마음과, 내 마음이 접붙여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이 마음은 언제나 세상과, 악마와, 죄악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소리는 주의 뜻을 따르려 하나 인간의 마음은 자기의 소욕을 따라 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주의 뜻대로 형성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믿음의 활용자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과 접붙여야만 주께서 크게 쓰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2) 예수의 심장이 내 심장이 되어야 합니다. 심장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구원적인 요소입니다. 심장이 멈추면 곧 죽게 됩니다. 그러나 심장이 튼튼하면 편만한 질병도 생명을 해할 수 없습니다. 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으로 변한다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된다는 말입니다. 썩어질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위하여 주의 뜻을 저버리고 배반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자살행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만 우리의 생명이 존귀한 것이 되고, 우리의 생활이 거룩해지며 나아가서는 영생하는 축복을 이어 받을 것입니다. 자기의 위신이나 체면이 산산조각이 날 경우라 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믿음을 전진해 나간다면 이것이 곧 예수님의 심장과 일치하는 생활이라고 봅니다. 3)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믿음의 활용자가 되려면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양복을 맞추어 놓았어도 입지 않으면 내게 유익이 없듯이 주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하여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시인하지 않으면 움직이는 산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막 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이 말씀을 앞에 두고 믿음으로 전진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줄 압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주님은 그에게 물었던 “내가 능히 이 일을 행할 줄 믿느냐?”라는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 5: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는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 말씀이 나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소원을 그림으로 그려 역경이 와도 물러서지 말고 소망을 가져야겠습니다.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올지라도, 믿음의 실상을 놓고 불타는 심정의 기도로 해결해 나가는 큰 믿음의 활용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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