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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대 선진의 믿음 (히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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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1:1-3까지 믿음의 본질을 밝힌 다음에 이어서 아벨에서 시작하여 중간시대의 순교자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순서를 따라 선진들의 믿음을 들어서 증거 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람의 믿음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믿음을, 노아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의 믿음을 각각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벨은 죽임을 당했고 노아는 죽음을 맛보지 않았고 노아는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이들은 “오직 믿음으로”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1.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벨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신앙의 선진들의 명단을 아담과 하와를 제쳐놓고 아벨을 믿음의 첫 증인으로 인용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벨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참 예배자의 화신입니다. 에덴동산 동편에서 쌓았던 아벨의 제단과 그 믿음의 제사는 그 후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애쓰던 길과 방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치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벨의 동물성 제물 즉 양의 피와 제물이 가인의 식물성 곡식보다 왜 더 나았는지는 설명이 없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벨의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오랜 전통에 의하면 아벨은 양떼 중에서 제일 살지고 흠 없는 것을 드렸고, 가인은 가장 보잘 것 없는 단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아벨의 제물을 태웠으나 가인의 제물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때 가인이 질투하여 어느 날 아벨이 산에서 자고 있는 것을 돌로 머리를 쳐 죽였다고 합니다. 아벨의 제물은 제일 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바칠 수 있는 제일 귀한 제물은 생명인데 그 생명은 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벨은 이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벨은 속죄의 보혈을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면에 가인은 속죄와 희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세상 종교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에 양을 잡아 피를 흘려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속죄하는 제사를 계시해 주었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말씀에 대하여 응답하고 순종하는 태도와 행동을 의미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서 제물을 바쳤고,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주셨습니다. 믿음의 표준은 사람의 태도나 제물의 분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인정과 증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나 제물만 보시지 않으시고 아벨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그대로 승천하였으니 성도 휴거의 모형입니다. 저의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을 배우는 동시에 우리들도 환란 전에 들림을 얻도륵 하여야 합니다.

(1) 인내-에녹의 삶이 300년 동안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간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하는 동안 가정생활에 여러 가지 역경이나 난관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그런 300년간을 꾹 참으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여하한 일에도 꾸준히 참고 끝까지 참으면 후회할 것이 없고 성공과 행복이 옵니다. 신앙은 참는 것입니다.

(2) 기도-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기도와 명상으로 행한 것을 가리킴 입니다.

(3) 대망-범사를 자기의 생각대로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모든 신자와 교직자의 실패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생활에서 생깁니다. 에녹은 300년간을 매일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교제하여 신의 음성을 듣고 또 지시를 받아서 300년 동안을 하루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의 신자나 교직자 중에는 신의 지시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이기주의에 정신이 빠져서 지위, 명예, 부귀라면 사명도, 체면도, 양심도, 단체도, 교회도 다 생각치 않습니다. 마치 개가 도적을 지키다가 도둑놈이 고기 덩어리 하나만 주면 꼬리를 흔들고 그것을 먹느라고 좋아서 주인의 명령도 자기의 사명도 장차 자기의 운명도 생각 없이 배만 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녹이 365세에 죽지 않고 승천한 것도 그가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3. 노아의 실천적 신앙 야고보는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왜 행치 못합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 11:7에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지시하심을 받아 경건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라고 했습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두려운 심정을 가진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고로 두려워하여 곧 실행하였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물의 심판, 홍수가 있을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고 노아는 산꼭대기에 가서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까닭에 자연히 실행으로 옳긴 것입니다.

(1) 전도-노아는 청천백일하에 전하기를 이제부터 40일간을 주야로 큰 비가 내려 대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전파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노아를 한 정신병자와 같이 또는 광인과 같이 취급하고 비웃고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한 사람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어도 낙심치 않고 실망치 않고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증거 하였습니 다.

(2) 방주 예비-홍수 심판의 전함도 위대하지만 보지 못하는 일에 지시를 받아 방주를 예비한 것입니다. 심판의 경고는 그렇다 하더라도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방주를 예비한다 함은 더욱 세인의 조소와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하나님의 지시”인지라, 천만인이 뭐라 하든지 문제 시 않고 방주를 예비해 둔 것입니다. 홍수가 임하기 전에는 세인은 지자 같았을 것이고 노아는 광인 취급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노아는 의인이 되고 세인은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노아는 신앙으로 방주를 준비했으나 세인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팔고 사고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홍수가 임할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오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의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음의 실행은 방주의 예비요, 믿음의 증거는 의를 전파한 것이요 믿음의 결과는 첫째, 가정을 구원한 일이요 둘째, 세상을 정죄한 일이요 셋째, 믿음의 후사가 된 일입니다. 결 론 믿음의 본질은 똑같으나 믿음의 표현은 독특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벨은 예배생활에서, 에녹은 하나님과의 동행 즉 영교에서 나타났고 노아는 방주의 예비 즉 모든 불신 세력과 조롱 속에서도 무서운 인내로써 나타났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이 우리 신앙이 되어서 하나님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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