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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계단 (히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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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많은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대인만큼 위대한 민족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 인구는 불과 이천만명을 넘지 못하며, 그 면적은 강원도와 비등한 지극히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나 유대인이 살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유대인은 가장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진 시련 속에서도 끝내 자신들의 나라를 회복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위대해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위대한 신앙의 국민입니다. 이스라엘은 인류에게 많은 신앙가들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적인 지도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신앙사에 있어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의 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그 역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은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가장 위대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가리켜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 (롬 4:2)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신앙의 전통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의 선조 가운데는 아벨, 에녹, 노아라는 세 사람의 신앙의 위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 방면의 신앙을 대표하며 각기 그 신앙의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은 희생의 제물로써, 에녹은 평범하고 정숙한 신앙의 생애로써, 노아는 과단성 있는 신앙의 생애로써 각기 그 특색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세 선구자들의 특색 있는 신앙을 전부 상속 받았습니다. 연대적으로 본다면 아벨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에녹이며, 나중이 노아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노아의 신앙이 출발점이라 볼 수 있고, 그 다음이 에녹의 신앙, 마지막이 아벨의 신앙이 될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은 노아의 신앙은 상속받았습니다 노아의 신앙은 과단성 있고 전투적인 신앙이라는데서 그 특색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히 2:7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이의 후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에게 담대히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모험적이고 과감한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신앙 사상에 노아의 행적은 위대하고 용감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신앙생활을 시작함에 있어서 그의 선구자 되는 노아의 신앙을 본받아 출발하였습니다. 저는 노아와 같이 용감하고 과단성 있게 정실을 배척하고 모든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하나님을 벗으로 삼기 위하여 사람의 원수 되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단연 정든 고향과 친척을 떠나 사막 저쪽에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며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갈 바를 모르고 다만 부패한 땅을 떠나라는 신의 명령을 믿고 떠났을 뿐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일종의 모험이며,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아무런 형체도 증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며, 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앙이란 희망의 기초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낡고 부패한 사회를 탈출하여 큰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떠날 것을 결정지었음은 실로 그의 선구자 노아의 신앙과 같이 과단성 있고 용감한 행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첫 걸음에는 반드시 이러한 신앙의 용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부름을 받았을 때에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간 것처럼 아브라함은 고향 갈대아 우르를 나온 후에 아버지와도 작별하고 하란을 떠난 것입니다. 신앙의 발단은 탈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인연을 끊지 않으면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목적은 자신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은 제 2 단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는 에녹의 신앙입니다.

2. 아브라함은 에녹의 신앙을 상속받았습니다 에녹의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성경은 “에녹은 3백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저를 데려가심으로 이 세상에 있지 아니 하더라” (창 5:24)고 증거 하였습니다. 동행이라는 말은 조용히 걷는다는 말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매일 매일의 생애를 보내는 것입니다. 큰 기적도 바라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변함없이 그와 동행하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믿는 생애입니다. 이런 신앙은 인내와 정숙과 대망입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어떤 용감한 행동이나 비약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하나님의 깊으심과 같이 깊이가 있는 신앙입니다. 에녹은 이런 생애를 보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들림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세상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고 가는 생애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결단성 있는 노아의 신앙만 받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약속을 대망하면서 오래 참으며 견디는 평화적인 에녹의 신앙도 상속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왔지만 하나님은 당장 그 약속을 실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후손 이삭과 야곱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현실을 보지 못한 채 그 긴 생애를 천막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진실하신 약속을 믿었으며 수백년동안 대망과 인내의 생애가 계속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으로 시작하여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신앙으로 지켰던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아벨의 희생적 신앙을 상속받아서 완전한 신앙에 도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을 단념하고 죄악을 끊고 하나님의 정의 앞에 서는 생활(노아의 신앙), 그리고 소망 중에 오래 참으며 약속의 집행을 하나님께 강요하지 않고 그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고요히 주와 동행하는 생활(에녹의 신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벨의 신앙을 소유했습니다. 신앙의 종국은 희생입니다. 아벨의 신앙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으니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면에 있어서 완전에 가까운 모범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희생은 아벨의 그것보다 더 높은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써 그 독생자를 드렸다”고 기록된 것처럼 그는 100년간 기도하여 얻은 약속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금보다도 더 귀하고 세계보다도 더 귀하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귀한 독자를 드린 것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격,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완성은 이와 같이 자기의 전부를 희생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소유가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바뀌어 질 때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종래의 신학에서는 구원을 세 방면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의입니다. 과단성 있게 죄를 끊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성화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셋째는 영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완전하여 하나님의 세계에서 약속의 기업을 얻어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의 구원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생활함으로 다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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