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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신앙 (히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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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은 가장 희망적이면서, 가장 위험한 시절입니다. 어린 시절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 시절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상극 속에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신앙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청년기에는 많은 회의가 동반되는 시기입니다. 어려서부터 믿어오던 하나하나가 의심이란 폭풍우 앞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회의를 배제한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성실성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의심이 나는 것을 그대로 방심하고 나가면 믿음을 유지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기에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1. 의심 없는 믿음 의심을 믿음의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분은 의심이 다 물러가면 믿음이 자리를 잡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의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 중에 가장 귀한 기능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의심이 없다면 문화의 발달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구는 평평한 것이고 태양이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는 것이라는 것을 진리로 알던 세계에서 “과연 그럴까?” 하고 코페르니쿠스가 의심하던 때부터 천문학은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여기에 대해서 과학의 분야는 의심이 있어야 하나 신학의 세계는 금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심이라는 관문을 통해 본 일이 없는 믿음은 그것이 아무리 열렬해도 “그 사람 자신의 믿음”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나 친구에게 “전염된 믿음”에 불과합니다. 믿음이란 나의 결단을 통한 것이라야 합니다. 믿음의 원수는 맹목적인 선입주견, 편견, 독단 고리고 전통에 대한 맹종 등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은 믿음의 책인 동시에 “의심에 차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위대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어거스틴이나 루터도 그들의 발자취를 보면 모든 사조나 신조, 전통에 대하여 깊은 의심을 가졌던 진리의 탐구자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덮어놓고 아웅하고 믿어주는 광신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2. 믿음 없는 의심 의심 없는 믿음이 인간의 성실성이나 인격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인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의심의 적으로 삼는 회의주의는 정반대의 자리에서 똑같이 위험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19세기를 회의의 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는 회의에 지쳐버린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회의주의는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의심할 줄 아는 성실한 인간을 믿는 일종의 종교입니다. 19세기는 의심하는 인간에 의해 하나님을 상실했다면, 20세기는 그 의심하는 인간자체를 상실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의심에 머물러 있는 한 아무런 확실한 것을 잡을 수 없기에, 아무런 결정도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미결정 상태에서 의심하는 것만으로는 견디어 내지 못하고 지쳐 버립니다. 이런 권태증은 체념, 냉소, 무관심 또는 허무에서 절망으로 굴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가 산다는 자체에 대해서도 “왜 나는 살아야 하느냐?”하는 의심을 던지다가 삶 자체에 대해서까지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내일을 믿을 수 없으니 오늘이란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너를 믿을 수 없으니 나를 믿을 수 없는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파괴적이고 더 위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3. 의심과 믿음 의심은 덮어둘 것도 아니고 피할 것도 아닌 동시에, 의심에 머물러 있어도 안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자기가 의심하는 그 의심 자체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런 분이시니 믿으시오라는 전도에 자기의 어떤 결단이 없이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이란 이념과 우상을 믿는 것이지 자기의 인격 안에서 만나는 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심한다면 그 의심하는 내 자신의 의심을 먼저 의심해 보고 그때 하나님이 인간의 대상인 물질이나 그림자가 아니고 내 지식으로 아는 분이 아닌 것까지 알게 될 때에 그 의심이 신앙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로마 도카의 “만일 오늘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아 있다면 현대의 실존주의자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실존주의라는 길 위로 잘 달려가다가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중도에서 그만 내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할 것이라”고 한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는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예수는 자기의 주관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폭력혁명을 거부하고서는 왕 위에 오르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노라고 자신의 목적을 밝혔을 때에 유다는 자기의 주관적 확신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는 과연 메시야인가?”라는 의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주관적인 확신은 부서졌습니다. 그것이 부서지는 때에 그는 예수를 팔아 버렸습니다. 그의 의심은 중도에서 그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의심을 중도에서 흐지부지 하지 않고 철저히 고민했더라면 그는 부활하신 예수의 영광에 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 도마는 의심이 많은 자라는 이유로 예수님이 버리지 않고 몸소 옆구리와 못 자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한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을 보장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썩을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의롭다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죄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두 면을 바르게 파악하는 때에만 겸손과 함께 용기가 있고, 슬픔과 함께 기쁨이 있고, 절망과 함께 소망이 있고, 의심과 함께 확신이 있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지성의 불성실에서 오는 광신주의도 아니요, 의심의 도가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회의주의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나 자신의 신념, 생활방법에 만족하지 말고 의심해 봅시다. 그리고 참 믿음을 가집시다.

4. 참 신앙은 생명을 건 신앙입니다 의심과 신앙으로 확고히 선 신앙은 생명을 걸고 보존하게 됩니다.

(1) 믿음은 생명을 건 순종입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예”가 있을 뿐 입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저 “예”라고만 했을 뿐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기능에 의지하지 않고 단순한 순종으로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믿음은 곧 생명을 걸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생명을 걸고 구걸하는 것입니다. “주셔도 되고 안 주셔도 할 수 없지요, 할 수만 있으면 해 주십시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고 하셨듯이 믿음은 확실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모세가 금 우상을 만든 백성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걸고 기도한 것이 나옵니다. “내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록에서 뺄찌언정 내 동족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생명을 걸고 구하는 것입니다.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주시지 않으면 축복이 없고, 주시지 않으면 병 고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과부의 간청 때문에 과부의 원한을 들어준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재판관을 과부가 번거롭게 함으로 저의 원한을 풀어 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은 반문했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걸고 구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오늘 핵무기의 위협 아래에서, 어느 날 소멸될지 모르는 역사 안에서 의심에 지치고 믿음을 잃어버린 이 세대에 증거 할 복음은 어두운 이 현실 안에서 커어튼 저쪽에 이미 와 있는 빛을 보는 믿음입니다. 이 의심을 헤치고 전진하는 믿음만이 현대의 불안을 극복하고 신선한 전진을 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 믿음을 다 소유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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