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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이 받는 징계 (히 1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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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예쁜 자식은 매를 주고, 미운 자식은 밥을 많이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꾸중과,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로 매를 맞던 기억이 납니다. 진정 저의 아버지께서는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저에게 매를 가하셨던 것임을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징계가 있어야 참 아들과, 참 아버지의 자격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그 자식에게 주는 징계도 반드시 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든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징계야 어떻겠습니까? 불리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징계는 반드시 주는 자에게 뜻이 있고, 받는 자에게 유익함이 있습니다. 잠 13:24에 “편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심히 징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서에 자식 교육을 잘못시킴으로 그 말로에 비참하게 죽은 자가 있으니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 제사장입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징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그리스도인을 징계하시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참 아들을 징계하십니다 5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내 아들아”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을 부르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들로 표현합니다(이사야 63장, 64장). 또 렘 31:9에는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본문에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1) 죄 때문에 징계하십니다(딛 2:12-13). 하나님께서는 사울보다 다윗을 더 사랑하셔서 왕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으셨지만 그가 범죄를 했을 때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여지없이 징계하셨습니다. 야곱도 역시 하나님께서 에서보다 더 사랑하셨지만 그의 형 에서를 속인 죄로 22년간 징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2) 참된 신앙을 주시기 위해서 징계하십니다(잠 17:3). 풀무는 금을 연단하지만,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3)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징계하십니다. 독수리가 새 중의 왕이 된 것은, 그의 어미가 새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다가 다시 받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연단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연단시킨 것도 마찬가지 방법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징계하십니까?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참 아들 됨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식으로 대우하고 아들로 다루실 때에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징계와 훈련, 고통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 전생의 업보다, 죄의 벌이다,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다. 우발적인 불행이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고난은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참 아버지라면 그 아들에게 징계를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참 아들이 되었다는 증거요 특권입니다. 여기에 사생자는 결혼에 의하지 않고 낳은 아들, 곧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기생의 아들, 노예의 아들입니다. 참 아들은 훈련의 대상이 되나 사생자는 내버려 둡니다. 사람이 범죄를 하고도 거기에 대한 징계를 받지 아니한다면 하나님이 내버린 사생아이지 참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참 아들은 주의 징계를 감수합니다(히 12:5)

(1) 주의 징계를 감수하기 위해서는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욥 5:17에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것은 욥은 시험을 경히 여기지 아니했다는 사실입니다.

(2) 징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히 12:5).

(3) 징계 받을 때에 인내해야 합니다(히 12:7). 신자가 비상한 고난을 만날 때에 이것을 참고 견디면 결국은 신앙생활의 큰 연단이 되어서 신앙의 큰 담력을 얻게 됩니다.

3. 주의 징계를 감수한 자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1) 형통과 생명의 축복을 받습니다.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도 복을 받는 길입니다. 와싱톤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장교들과 함께 연회석에 모였을 때에 한 유명한 불란서 장교가 와싱톤의 모친에게 묻기를 “어떻게 이런 아들을 길렀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그 모친은 대답하기를 “나는 그에게 복종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알아드리고 복종한 것이 이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설교자 조웨트는 말하기를 “한번은 구세군 사관 70명이 상부로부터 외국에 선교하러 가라는 사명을 받았을 때에 그들은 어느 나라로 보냄을 받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복종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들은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들은 징계를 받을 때에 그 당시에 아픈 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 뒤에 의와 평강의 열매가 있을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아무리 평안하고 좋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장차 올 더욱 좋은 것을 막는다면 그것을 아낌없이 내어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좋은 것이 오기를 희망하는 소망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장래에 평강의 열매를 가져오는 징계를 우리는 달게 받으며 잘 참아 나가야 합니다. 영원한 현재를 저울 위에 놓고 달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무거운 것이라도 영원에 비하면 머리털보다도 가벼운 것입니다. 또한 영원토록 좋은 것을 생각할 때에 현세의 환난과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2)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이 일으켜 세워집니다. 신앙이 없는 자는 환난을 만날 때 기도의 손과 경배의 무릎이 약화되지만 낙심치 않고 감수하는 자는 더욱 기도하고 더욱 하나님께 경배하게 됩니다.

(3)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롬 5:3). “우리가 환난 중에도 기뻐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로부터 이국 타향 애굽에까지 팔려갔으나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또 그는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까지 갇혔으나 소망 중에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후일에 총리대신까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옥중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기도하고 찬미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전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결 론 신자에게 내리는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여 어떠한 고난도 유혈의 각오와 인내로써 극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고난을 감수할 때 주님의 참 아들이라는 것이 시정될 뿐더러 연약한 무릎과 피곤한 기도의 손이 고침을 받아서 건강해지며 순교자의 반열에 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징계하신다면 여러분의 죄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이며 여러분을 단련시키기 위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고, 큰 사명을 맡기기 위해 연단시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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