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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교회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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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전반에서 기독교의 특징은 세상 환난이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때에도 신앙으로 인내하는 것임을 말하였고 오늘 본문 말씀 즉 후반부에는 기독교 이상의 최고 요소는 화평과 성결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황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난이나 하나님의 징계를 인내하는 힘이 있다 하더라도 불화, 분쟁, 부정, 불결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에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란 말씀은 전 인류를 가리키는 것보다는 기독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연대책임을 가진 곳이므로 각자가 자기 신앙만을 지키느라고 급급하고 연약한 다른 형제들의 신앙상태에는 무관심한 개인주의는 결국 자기 한 사람의 신앙도 유지하지 못하고 교회도 전체적으로 신앙의 유지가 어렵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성장하고 육성하고 전진, 향상, 부흥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도 좋으나 성결만은 다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화평을 존중히 여기고 추구하는 동시에 성결을 존중해야 하며, 지켜야 하며,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결을 희생시키는 화평은 화평이 아니요 타협이며, 세속화이며, 타락인 것입니다. 불의와 죄와 더불어 화평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화평하여야 합니다. 성결을 떠나 화평이 성립될 수 없는 것 같이 화평을 떠나 성결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화평과 성결을 추구하는 교회는 복된 교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화평과 성결을 추구할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는 교인이 없는 교회 15절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는 예수의 피로 공로 없이 구속함을 받는 것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이 은혜에서 끊어지는 자가 됩니까? 히 3:12-13에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였으니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 “하나님을 떠남”, “떨어짐” 이것들이 은혜에서 떨어지는 3단계입니다. 율법을 준수하여야 구원 얻는다는 히브리적 주장은 속죄의 복음 신앙을 희박하게 하고 일보 전진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마침내는 타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는 일은 참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끊어지는 불행한 일이요 태아가 탯줄에서 끊어지는 비참한 일입니다. 다음 본문 14절에서 화목과 성결을 권하고 이어서 은혜에서 끊어진 자를 경계한 것은 불결과 불신한 생활로 말미암아 은혜에서 끊어지는 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결국 불신앙이 은혜에서 끊어지는 시작이 요, 불성결이 죄가 은혜에서 끊어지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작당 분쟁하는 자는 다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본문에 “거룩하지 못한 자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으니 불성결한 죄가 주님과 격리하게 하는 동시에 은혜에서 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AD 4세기에 동로마 제국 수도 콘스탄틴노플의 대감독이었던 교부 크리소스톰은 교직의 타락과 황실의 부패를 맹렬히 공격함으로 동로마 황후 유도구사와 수차 충돌하였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자기들을 공격하는 크리소스톰을 처벌하고자 하여 어전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때 한 신하가 말하되 “크리소스톰은 소유가 없으니 재산을 몰수할 수 없고, 저를 투옥하면 기도할 기회를 얻게 할 것이요, 그리하여 본인은 기뻐하고 세상 사람은 그를 영웅시 할 것입니다. 사형시키면 천당 갈 것을 기뻐할 것이니 크리소스톰에게는 아무 벌도 줄 것이 없고 저는 다만 죄악에만 무서워하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어전회의는 혼미에 빠졌고 결국 크리소스톰을 석방시켰습니다. 그 신하의 말은 크리소스톰의 마음을 아는 말입니다. 신자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은혜에서 끊어지게 하는 죄입니다. 목숨을 끊어 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2. 괴롭고 쓴 뿌리가 없는 교회 신 29:18에 “오늘날 너희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라고 하셨으니 하나님 배반하는 것,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이 독초이며 쓴 뿌리입니다. 은혜의 복음에서 떨어진 교인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 그 심령은 하나님을 배반한 자요, 세상과 규합한 자요, 사탄의 종입니다. 교회 내의 이단은 물론, 비 복음 사상이나 거룩치 않은 세속의 운동들도 은혜의 근원에서 난 것이 아니요 다 쓴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 쓴 뿌리의 세력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쓴 뿌리는 14척 깊이까지 나무뿌리가 뚫고 들어갑니다. 설악산, 울산 바위 같은 산을 보면 흙 한줌 없는 돌산인데도 젖나무가 뿌리를 박고 서 있습니다. 여기서 뿌리의 세력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능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심령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잠재해 있는 죄악의 쓴 뿌리의 세력도 강력한 것입니다. 나무뿌리가 돌 벽을 14척이나 뚫고 내려감과 같이 악독한 죄악의 쓴 뿌리도 무서운 세력을 가지고 6천년 동안 인류의 심령 속에 뻗쳐 왔습니다.

(2) 쓴 뿌리의 해독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균과 같이 감염시키고 전염병과 같이 괴롭히므로 독기를 교회의 많은 사람에게 뻗쳐 고통을 줍니다. 그 결과 문란과 유혹이 들어와 화평과 성결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베이면 그 뿌리에서 여러 가시나무가 나는 것처럼 이 쓴 뿌리(苦根)도 베이면 또 나고, 또 베이면 또 납니다. 내 마음에서와 교회에서도 이 쓴 뿌리를 베고 또 파내듯이 나의 죄악을 제거하기에 늘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3. 버림받은 망령된 자가 없는 교회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음행”과 “망령”이 쓴 뿌리의 열매입니다. 본문에 음행자라는 말은 본래 남자 매음자나 음행자를 말합니다. 성욕은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강한 힘을 가졌고 인간은 그 성욕에 대하여 가장 큰 약점을 가졌습니다. 본문은 이런 성적 의미 이외에 이익 때문에 정절을 파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자적으로는 육신의 음행으로 해석함이 가하고 문맥으로는 변절자로 해석함이 적당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음행자란 변절과 음란, 두 가지 범죄를 다 의미한 것입니다. 계시록에 니골라당은 음행을 공공연히 시인하던 무리였고 로마 법왕 중에 알렉산더 6세는 축첩자가 한 두 사람이 아니었고 한국의 문 선명도 혼음파입니다. 이는 모두 교회를 더럽게 하는 쓴 뿌리의 열매요, 교회를 흔드는 쓴 뿌리의 열매입니다. 망령된 자는 원어로 성별의 반대말로써 비속한 것을 가리킵니다. 성별된 교회가 세속한 일을 하는 것이 망령된 일이요 성도가 세상에 빠지어 사는 것이 망령된 것입니다. 에서와 같은 자를 망령된 자라 칭합니다. 그는 한 그릇의 팥죽에 장자의 권을 파는 일과 같은 망령된 일을 하였습니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망령된 일입니다. 성별을 지키지 아니하고 세속화하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장자의 명분이란 아벨 이래 계승하여 온 신앙의 전통입니다. 거룩한 명분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식욕 때문에 매각하여 버렸으니 이것은 망령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는 아벨이며 계계승승하여 내려온 신앙의 전통을 계수한 단체요, 신자와 성직자는 아브라함 집의 장자의 명분을 계승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을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 알든지 교회를 세속 사업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거룩한 명분을 팥죽 곧 빵 문제 해결에 이용한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입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눈앞의 순간적인 행복을 위하여 성령의 은혜를 경멸히 여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잃는 자는 결국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된 교회는 화평과 성결이 겸비된 교회이며 화평과 성결에 도달하는 길은 은혜의 낙오자가 없는 교회, 괴로운 쓴 뿌리가 없는 교회, 버림받은 망령된 자가 없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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