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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불변성 (히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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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변하는 것입니다. 산천도 변하고, 인물도 변하 고, 윤리와 도덕도 변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상도 풍습도, 사물의 이치도 변하고, 세계와 역사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불변하십니다. 이 세상은 파도가 흉흉한 바다와 같고, 인생은 창파 중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아서 요란과 변동을 많이 겪지만 우리 주님은 저 우주에 떠 있는 북극성과 같이 영원하고 동일하십니다.

1. 예수님의 마음은 변치 않으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어제 하고 싶던 일이 오늘은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작년에 간절히 원하던 것이 금년에는 싫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예전에 선하던 사람이 오늘에는 악해지기도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과거에는 악하던 사람이 오늘에 선해지기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여 상황이나 정세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하십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그의 일생을 통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마굿간의 탄생, 목수로서의 소박한 생활, 3년간의 공생애, 십자가의 죽음, 이 모든 것에도 온유와 겸손은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은 변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일생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예수님의 교훈은 불변입니다 사람의 교훈은 상황과 정세에 영향을 받습니다. 전에는 땅이 평평하다고 하더니 지금은 둥글다고 합니다. 전에는 하늘에 끝이 있다 하더니 지금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천지가 없어질찌언정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할 수 없고,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던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교훈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진리임을 모든 인류가 아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마치 지혜 있는 사람이 집을 반석 위에 지은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영원불변하신 교훈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여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인류 구속의 목적과 방침이 불변입니다 사람이 정한 목표는 종종 변합니다. 이 사업에 실패하면 저 사업으로 옮기는 것이 사람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생명을 구원코자 하시는 목표를 바꾸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 방침은 2,00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든지 불변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고 주님께서 직접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침대로 믿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을 믿는 것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하십니다 오늘날 우주의 모든 것들은 가변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가변적인 우주 속에 영원불변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영원불변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시고 중심이 십니다. 그는 성육신(Incarnation)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으며 부활 승천하셨으나 그의 완전하신 인격, 영원한 하나님의 성품에는 변동이 없으십니다. 행 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한 것이나, 롬 8: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한 것은 그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환경이나 정세에 따라 변하기 쉽습니다. 어제 서로 열심히 사랑하던 마음이 오늘 식어지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일정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합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죄인의 친구가 지시고 5,000명의 사람들을 고치시고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십자가에 죽은 것은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변함없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가 나를 사랑하사 몸을 버리셨다” (갈 2:20)라는 말씀을 한 것은 정말 옳은 표현입니다. 요한도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점철된 일생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가 질 짐을 대신 지신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넓은지 생각할수록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불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이 변함에 따라서 그에 대한 태도도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인간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은 그리스도 자체와 그의 진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끝없는 변화 중에 있는 인간이고 영원불변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은 임금에게 충성하였고, 남편에 대해서 절개를 지켰습니다. 忠臣은 不事二君이요, 烈女는 不更二夫라는 정신이 우리 겨레의 심성에 깊이 뿌리 박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충신의 후예들이요, 열녀의 자손들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고 읊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시나,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곤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고 읊은 이조 사육신 중의 한 사람 성삼문의 시에서 충신의 마음을 우리는 일찌기 보아 왔습니다. 우리는 이 정신을 이은 후예로써 엄동설한 같이 사나운 환란과 핍박을 당할 찌라도 만왕의 왕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죽어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골짜기에 봄이 가니 꾀꼴새 안 보인다. 개나리꽃 떨어지고 살구꽃은 날아갔다. 그러나 오직 산창 밑에 푸른 대나무만이 절개 변치 않고 날 기다리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어느 호탕한 선비가 집을 떠나 멀리 타향에서 장구한 세월을 허비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전에 자기에게 아양을 부리던 애인들은 다 달아 났지마는 오직 본처만이 그의 절개를 변치 않고 독수공방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을 찬탄한 노래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도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이런 충절과 절개가 일제시대의 신앙인에게도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기어이 반대하던 주 기철, 최 봉석 목사가 그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영원불변하신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훌륭한 전통인 충절과 절개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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