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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미의 제사 (히 1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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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옛날부터 많은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조상신을 모신답시고 명절 때마다, 제삿날마다 제사를 드리고, 고기를 잡으러 가기 전에도 바다 신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그뿐 아니라 산에 가서는 산신령에게 비가 안 온다고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이 땅위의 백성은 제사를 위해 태어난 백성 같습니다. 이러한 제사 풍습은 이 땅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방방곡곡을 뒤져 보아도 제사 풍습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 풍습이 아무리 지역에 따라서 다양하다하더라도 공통점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 의식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득을 구하려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와 기독교의 제사를 살펴보면서 참된 제사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1. 구약에 나타난 제사 레위기를 통해서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제사 풍습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다로운 정도는 먹는 음식에 대한 규정까지 따로 정할 정도로 심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제사법이 까다로운 것은 아마도 영혼의 세계를 육신의 세계보다 우위에 둔 까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전통만이 아닙니다. 희랍사상이나 노스틱주의자들에 의하면 물질이란 것은 악한 것이기 때문에 육체의 모든 것을 철저히 제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노스틱주의자들은 육체가 달라짐에 따라 영혼이 이동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욱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물질자체를 악하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영혼에 먼저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의 죄악 됨을 고치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제시되고 있는 제사법은, 물론 제사 행위자체를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행위를 통한 순종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2. 신약에 나타난 제사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 되심으로 인해 제사를 여러 번 지낼 필요 없이 단번에 제사를 완전히 지내게 되었습니다. 원래 대제사장이 제사를 지낼 때는 두 가지 형태를 갖습니다. 그 첫째가 대제사장이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이고, 둘째로는 국민의 죄를 위해서 염소를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약적인 제사는 수백 번, 수만 번 드렸다 하더라도 인류의 죄악을 없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효력이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 · 구약시대를 통하여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진실하고 고귀한 제사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3. 찬미의 제사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드려야 하는 참 제사는 찬미의 제사입니다. 여기서 찬미의 제사라고 하는 것은 이미 자신의 몸과 피를 단 한번에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인류의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찬미하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본문에 “장차 모든 제사는 폐지될 것이나 찬미의 제사만은 폐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바로 이 찬미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는커녕 두려움의 제사를 드립니다. 즉 “예배를 하루 빠지면 천벌을 받을 것이므로 예배에 꼬박 꼬박 참여한다.” “십일조를 안 하면 재앙을 받을까 두려워서 꼬박 꼬박 십일조를 한다”는 식의 제사태도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액땜을 하기위한 것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감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예배가 아닌 것은 무언가 잘못된 예배입니다. 그런 예배는 자신을 위한 예배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망치는 예배가 됩니다.

4. 오직 선행과 서로 나누는 제사 16절에 “오직 선행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미의 제사는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행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봉헌까지도 포함합니다. 즉 우리에게 주신 이 소중한 하나의 삶을 은총의 감사 속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심정을 가리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불꽃을 튀길 때 독일의 교회는 히틀러의 탄압으로 무서운 시련을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그 시절 젊은 목사 마르틴 뮐러는 히틀러를 반대한다는 이유 때문에 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8년의 옥고를 치른 후에야 전쟁이 끝나 석방되었습니다. 그가 석방된 후 전에 있던 교회에서 첫 설교를 하였는데 그 설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교회가 시련 당할 때 우리들에게 간절한 두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어려운 이 때를 인도해 나갈 좋은 지도자요, 또 하나는 잠자던 독일 교회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마음이 약해지고 얼마나 흔들렸던 가요?……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원하는 기도가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순간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히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 시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최선의 은혜였고 그야말로 최선의 찬미의 제사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고 말했습니다. 16절에 “오직 선행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찬미의 제사와 선행과 나누어 주는 제사는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드려야 할 제사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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