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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의 신앙 (약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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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시험이라는 말은 고난과 시련을 뜻하는 것으로써 질병, 환난, 빈곤, 실패, 참화, 핍박 등을 이룹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긴 이후부터 땀 흘려 수고하여야 먹고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고난을 운명적으로 받고 세상에 살게 되었으니 시련이란 언제나 인생과 동행하는 친구처럼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의 바로왕, “네 연세가 얼마뇨”라는 물음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야곱과 같이 인간은 모두 험악한 세월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은 어떤 사람에게는 파멸로 이끌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생에 대한 새로운 용기를 일으키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선을 이루는 영광스러운 기회로 삼습니다. 그 이유는 시험과 고난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여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시험과 고난에 대처하는 사람의 태도에는 둘이 있습니다.

1. 시험과 고난을 당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험과 고난이 닥칠 때 이웃과 사회와 자신과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는 시험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그를 파괴시킵니다.

2. 시험과 고난을 당할 때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긍정적인 자세가 성경이 가르치는 자세입니다. 즉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에 이를 기쁘게 맞이하는 방법입니다. 시험, 고난도 여러 가지이나 그것을 이겨냄으로 오는 기쁨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시험과 고난을 자원해서 찾거나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이 올 때는 긍정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니 슬픔을 찾기보다는 기쁨의 근원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시험은 밖에서 오는 시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 또 사탄에게서 우리 마음을 통하여 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야 누가 하나님에게 감사, 찬송을 못하겠습니까? 욥처럼 재물과 자녀와 건강을 다 잃어버리고 친구, 아내의 배신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유무, 순종과 충성의 유무를 시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라는 시험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어려운 때를 당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따랐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히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시험과 고난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것은 어떤 곳에든지 영구히 거하며 영구히 소유 삼을 만한 것이 못됨을 가르쳐주고 우리들로 더욱 생을 깊이 생각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며 경건하게 하며 온전한 인격을 이루게 합니다. 또한 고난과 시련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인생의 무력을 깨닫게 하며 더욱 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의 기도를 뜨거워지게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문 2-4절에서 고난과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3.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시험과 고난은 믿음의 단련을 위한 시험이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있었기에 많은 고난과 시험을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누구보다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들에게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풍습, 언어를 지키고 세계 타민족과 동화되는 것을 금하였기에 가는 곳마다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성도의 핍박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시험, 핍박은 사도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박해 정지령이 내리는 때까지 25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련이 바로 교회의 부흥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에서 기쁨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지도가 있기에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시련에서 인내를 만듭니다 3절에 “이는 너희 믿음에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시험을 이기는 근본 동력은 인내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집니다. 시험을 우리에게 주심은 인내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벧전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험과 핍박과 질병 등의 모든 고난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따라 구원의 보조물로 바꿔진다는 것으로 온전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지 않고 태평하게 내버려 두신다면 우리에게는 악을 대담하게 맞설 인내심이 없게 되고 맙니다. 실제로 악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도움의 가치를 파악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실한 자들은 고통의 도상에서 인내를 배우지만 불경건한 자들은 마치 애굽의 바로의 경우가 그랬듯이 고통 속에서 더욱 더 광적인 상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5.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각 부분에 완비된 완전성을 말합니다. 마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말하여 하나님 외에는 온전한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을 완비치 못한다고 해도 온전을 향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노력을 요구하시는 것이며 이 때의 온전이라는 말은 마음의 성실성을 가지고 가면을 벗고 온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온전을 이루는 성실한 마음으로 시험에 대처해 가며 날마다 확고한 불변성을 성장시켜 간다면 그는 매일 매일 많은 승리를 얻으면서 살아갈 것이며 매일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표준에 점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있는 동안은 시험과 고난을 면제 당하지 않고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시험 앞에서 과감히 신앙으로, 기쁨으로 이 시험을 맞이하면 하나님께서 전화위복케 하사 어둠이 광명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약함이 강함으로, 가난이 부함으로, 비천이 존귀로, 저주가 축복으로, 패배가 승리로 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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