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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선의 것 (약 0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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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선의 것 19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이라 했습니다. 진리를 떠난 자를 다시 돌아서게 하는 정성은 사랑의 절정이며 형제애 이상으로 평가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주님을 믿다가도 다시 유대교에 돌아가는 유대인 기독교 성도나 그리스 철학이나 동방의 신비종교에 미혹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시대나 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을 미혹의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전도의 수고는 과연 최대의 사랑의 봉사요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귀한 최선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단순히 지적, 철학적, 명상적, 추상적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도덕적인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어떤 지적인 것도 아니요 마음의 추구의 대상도 아니요 의견이나 토론이나 논쟁의 내용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연구할 것이 아니라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생각하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한 이를 돌이키게 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2. 인간 최고의 업적 20절에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입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업은 생명을 구하는 사업이 제일 귀한 사업일 것입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은 전도의 일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함으로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라”하였습니다. 여기 영혼은 누구의 영혼이겠습니까? 전도의 복음을 듣는 자의 영혼과 전도자의 영혼 모두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 듣는 자나 전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시킬 수 있는 그 활동 자체가 자신이 벌써 구원 받은 이후에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고 딤전 4:16에는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자는 죄가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하느니라”는 말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생애에 광명을 가져다 준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것의 혜택을 입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도인의 상은 최고의 명예입니다. 전도의 명예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하는 명예이기 때문입니다.

3. 인간 최고의 업적인 전도 전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말을 전하되 말씀과 글을 가지고 전하기도 합니다.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뜻이 있는 말이 있고 뜻이 없는 말이 있습니다. 중한 말이 있고 경한 말이 있습니다. 은혜로운 말이 있는가 하면 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귀한 말이 있고 야비한 말이 있습니다.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말만큼 값싼 것이 없는가 하면 말만큼 귀한 것도 없습니다. 전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장 귀하고 중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는 하나님 말씀의 표현의 역사입니다. 독일의 루터의 말이 없었다면,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천 마디, 몰트게의 만 마디의 말이 있다 해도 오늘의 독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영국을 만든 것은 웨슬리의 설교, 구세군의 윌리암 부스의 설교, 휫필드의 설교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나 나라를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 전도의 일만큼 귀한 것은 세상에 다시없습니다. 생명의 유지, 나라의 유지는 금이나 은이나 검이나 비행기나 탱크나 군함이나 자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보다도 더 가벼운 말에 있는 것입니다.

4. 전도의 기쁨 전도는 가시밭의 길이요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전도자에게 있어서는 고통 속에 참 기쁨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4:34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전도는 고통과 기갈이 아니라 쾌락이요 양식이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고전 9:16에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라고 한 것은 전도만큼의 기쁨이 세상에 다시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는 자도, 전도 받는 자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이 전도사업입니다. 전도는 양식입니다. 전도는 쾌락입니다. 전도는 환희입니다. 전도는 만족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남의 동정을 받을 사업이 아니라 남에게 부러워함을 받을만한 가장 귀한 사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완전한 행복자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일 것입니다.

5. 전도의 중요성과 사명 예수님의 탄생 시에 이미 전도가 얼마나 큰 기쁨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눅 2:8-10절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치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최초의 명령은 전도적 사명이었습니다. 요 20:21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는 주께서 중요히 여기시고 제자들도 역시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도의 중요함은 더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전도의 사명은 교역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롬 10:13-15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행 8:1-4에는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나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전도의 책임을 가지고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도륵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여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교사로서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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