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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생활에 힘쓰라 (벧전 0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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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그네 인생 13, 17절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너희가 나그네 되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경주자가 경주하는 것과 같은 생활입니다. 경주자는 앞에 있는 상을 바라보고 푯대를 향하여 몸의 허리를 동이며 몸을 가볍게 하고 달립니다. 이렇게 볼 때에 성도의 생활은 나그네와 같은 생활입니다. 허리를 동여매고 살아가는 생입니다. 특별히 핍박과 고난의 성도들에게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말은 현실적인 것입니다.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삭도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야곱의 생애 또한 나그네 생활이었습니다. 모세도 나그네 생활을 보냈고 이스라엘 백성 또한 광야 40년을 나그네 생활로 보냈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 생애 역시 나그네 생활이었습니다. 환난과 역경이 가는 곳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으로 허리를 동여매고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겼습니다. 오늘의 성도인 우리들도 광야같이 거칠고 황막한 세상을 나그네 생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그네에게는 본향이 있습니다. 본향이 있기에 본향 아닌 타향생활은 나그네 길인 것입니다. 세상의 지역적 고향과 본향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으나 그러나 성도의 본향은 하늘나라로 다 같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니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죄 된 생활을 할까 두려워하고 불신으로 생활을 할까 두려워하고 안식처 즉 본향 땅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며 본향에 들어갈 차비가 떨어져 있는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을 사모하는 생활, 이것이 천국에 본향을 둔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자식 14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신자를 가리켜 “순종하는 자식”이라 하였으니 성자 예수께서 죽기까지 성부에게 순종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어디까지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임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 자제 중에서 핵가족이라는 유행의 바람 때문에 나이 많은 부모를 업신여겨 돌보지 않는 패역한 자식들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자식은 순종하는 자식이 제일 귀한 자식입니다. 바울이 효를 가르치되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엡 6: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무엘은 삼상 15:22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나 부모님에게나 우선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순종합니까? 노부모님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십니까? 히 11: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하였듯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언약한 기업을 반드시 주실 줄 믿고, 일찍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나그네 길이나 천신만고를 무릅쓰고 순례의 길을 떠났고 이렇게 순종한 결과로 신앙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천국을 믿음으로 받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모두 그 일에 순종의 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자식이 될 것입니다.

3.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4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또한 행 17:30에는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사욕이란 딤 3:3에서 기록되었듯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란 말씀처럼 그런 삶을 말합니다. 이전에 행하던 가증스러운 일들은 마귀의 자식이나 할 일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윗 왕의 왕자 중에 암논이란 패역한 자식은 이복형제 압살롬의 디나 누이를 간음하고 압살롬에게 맞아 죽었으니 이는 음란한 사욕을 좇다가 망한 자이요 압살롬은 왕위를 탐하여 부왕 다윗 왕을 반역하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권세의 사욕을 좇다가 망한 자입니다. 암논이나 압살롬 같이 사욕을 좇는 자식들은 다윗 왕가의 영광을 영위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하는 교인들이라도 사욕의 종이 되면 천국의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엡 5:5-7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마을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통규 하였던바 이 고통은 예수 믿기 이전의 고통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난 후의 고통의 싸움이었습니다. 명나라의 학자 왕양명도 “산중의 산적보다 마음속에 있는 적이 더 무섭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사욕을 극복하는 일은 일생일대의 대전투의 고전이니 신자들은 이에 방심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갈 5:24에 “성도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이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하여 버리고 성령을 힘입어 행할 것입니다.

4.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하여야 할 이유를 본문에서 두 가지로 보았으니

(1) 그 하나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살전 4:7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거룩치 못하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어기는 죄인이 됩니다.

(2) 둘째 이유는, 16절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거룩하니 자식이 거룩해야 참된 자식의 도리를 걷는 것입니다. 불신자 집의 딸이 기생이 되었다 하는 것은 혹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으나 목사, 장로의 자식이 방탕 한다면 이것은 무엇이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의 자식들은 부정하려니와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거룩하여야 합니다. 히 10:10에 “이 뜻을 좆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고백하였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거룩하게 되는 것이요, 이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롬 15:16의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느니라” 함과 같이 성경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자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는 보혈의 씻음과 성령의 힘으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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