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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벧전 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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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에 간직할 것 2절에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은 골육으로 “이루어진 신체만을 가지고 사람이라고 아니합니다. 우리는 육체 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참 생명의 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지 아니한다면 부모가 걱정할 줄 알고, 정원에 재배하는 화초가 크지 아니하면 가꾸어줄 줄 알거든 우리의 정신생활이 몰락을 당하고 우리의 영이 고갈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면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닙니까? 시간은 변함없이 지나가고 모든 유기체 생물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적 생명도 존속하기 위해 성장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흘러 내려가는 강물 위에 있는 배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아니하면 반드시 그 물결을 따라 내려가는 것과 같이 죄악 세계의 물결 위에 떠있는 우리에게 발전과 성장이 없다면 죄악과 함께 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성장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는 성장이 없듯이 우리의 영이 죽으면 성장치 못합니다. 또한 스스로 만족한 자에게는 성장이 없습니다. 또한 필요 없는 걱정도 성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영을 성장시킬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몰라도 역사하실 수는 있겠으나 인간이 응답해야 하는 면에서는 우리는 지적인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닫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설명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지적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속 읽어야 할 책이요 또 연구해야 할 책입니다.

(2) 영적 진보를 위한 기도 영력으로 성장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진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기도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고요한 교제를 가짐으로 영적으로 깊은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본문 2절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 같이 궤휼이 없는 도의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점점 자라 구원에 이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에 자라고, 은혜에 자라고, 주를 아는 지식에 자라고, 믿음에 자라고 모든 일에 자라서 주와 같이 되기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한 시간을 정하고 하나님으로 교통의 은혜를 가져야 합니다.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과의 기도 시간을 가짐은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조건으로 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 중에는 생략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수 있으나 기도 시간은 결코 뺄 수 없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영적 생활의 성장은 절대적으로 성찬에 참여함에 있습니다. 대저 우리 신앙은 거룩한 곳에 직면하면 할수록 우리의 부족을 더욱 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죄에 예민하여 집니다. 예민한 저울은 종이 한 장의 무게에도 기울어지고 똑같은 종이에다 한 종이에 연필로 글을 써 놓으면 종이에 묻은 연 때문에 그 무게로 기울어지기까지 합니다. 이와 같이 죄악 속에 사는 자는 여간한 큰 죄를 지어도 아무 감각이 없지만 신앙으로 성장한 사람은 예민한 양심을 가지며 또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적은 죄라도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사망에서 구하랴”고 부르짖었으며 또 말하기를 “나는 아직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예민해야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베푼 성찬에 참여할 때 더욱 증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는 삶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2. 거룩한 제사장 4-5절에 “사람에게는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습니다.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민족을 자랑합니다. 한국은 백의민족, 예의 국가, 선비의 국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자랑하고, 중국은 대국을 자랑합니다. 일본 사람은 해 돋는 나라의 백성으로 자랑하고, 헬라인은 문화인임을 자랑하고, 로마인은 법률을 자랑하고, 미국은 물질을 자랑합니다. 또한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며 또한 제사장 나라로 자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하시었습니다. 제사장의 나라는 영예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사명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혈통적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적용시켜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든 크리스찬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주어졌고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천국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각성과 자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머릿돌 7절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로 하여금 거룩한 집인 교회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과연 생수를 주시는 반석으로서 그 위에 뭇 사도들과 성도들이 거룩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머릿돌 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며 진리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머리로 하는 기독교만이 참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머릿돌 되시는 주님만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속죄의 도, 십자가의 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의 기초, 교회의 기초, 우리나라의 기초가 유대인의 버린 돌이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되실 때에 참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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