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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교적 신앙 (벧후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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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금전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고 지혜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로 성도의 생명이요 교회의 초석이요 소망의 실상입니다. 또한 믿음은 아래로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무기요 위에서 내려오는 은혜 받을 그릇입니다. 실로 믿음은 세상의 모든 정욕과 모든 죄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1. 보배로운 믿음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 하였습니다. 1) 하나님과 주님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후서를 보내는 베드로의 신앙이나 베드로 후서를 받는 성도들이나 그 신앙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사도는 특권과 직책이 있으나 신앙에 있어서는 높고 낮음이 없이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나아가서는 이방인의 신자들과 베드로의 신앙까지도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시간적인 선후의 차별도 뜻이 됩니다. 즉 먼저 믿는 신자나 뒤에 믿는 신자의 믿음 자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2)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와 함께 받은 자”라 함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되 한 개인이 체험한 신앙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공동적으로 받은바 은혜를 말합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보편적인 신앙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개인적인 독단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만족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신앙적 교제를 요합니다. 그래서 공통적인 신앙의 고백인 사도신경이 있는 것입니다. 3)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에게 편지 하느니라”고 본문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신앙은 받은 것이라 하여 신앙의 수동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기독교는 계시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인간의 창조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신앙인 것입니다. 롬 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수동적으로 들음을 통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복음 전도, 즉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그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체험을 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위에서부터 듣고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4) 이러한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보배로운 신앙에 비하여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에서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판 것처럼 너무나 헐한 것과 믿음을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2. 은혜와 평강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뛰어놉니다. 그러나 고기가 아무리 헤엄을 잘한다 할지라도 물이 없으면 헤엄을 치며 뛰놀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아무리 평강의 생활을 하고 싶어도 받은바 은혜가 없이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평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평강이란 모든 불행과 모든 역경을 초월하여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생활입니다. 병중에서도 기뻐 찬송하는 생활이요 풍랑 중에서도 기뻐 노래하는 생활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폭풍우 속에서도 찬송가(개편) 431장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를 불렀고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찬송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평강은 이렇게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런 평강의 생활이 받은바 풍성한 은혜 속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3.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얻습니다 3절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일반적 생명을 말함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중생한 참된 생명을 이름입니다. 경건은 이런 참된 생명을 소유한 성도만의 생활이요 중생치 못한 자에게 경건한 생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의 정복 정모를 착용하므로 학생의 신분을 더욱 밝힘과 같이 신자는 경건의 생활을 함으로 신자의 생활을 밝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로써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을 때 신자로서의 모습은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중생했다 하더라도 생활에 경건성이 없으면 영적생명의 힘은 퇴화되고 맙니다. 성도들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생활에 힘씀으로써 영적인 성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4. 지극히 큰 약속을 받습니다 4절에 “이로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을 보시고 약속하십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기록이며 성경은 모든 신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수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창 12:3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큰 약속을 허락하시고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 신앙생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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