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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기하자 ! 심판의 계시를 (벧후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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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의 재림은 기독교의 교리 중의 진수요 성도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만일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면 신자의 소망은 뜬 구름과 같을 것이요 동시에 신앙은 지하로 전락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샛별처럼 빛나고 있으니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구름타고 오실 것입니다.

1. 주님의 계명을 기억시킵니다 1-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된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반복의 가치 “둘째 편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며”라는 표현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는 어떤 사실을 마음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 3:1에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에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수고로움이 되지 않고 그리고 그들에게 대해서도 유일한 안전한 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특별히 잊어서는 안 될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나 주의 재림에 관한 진리는 반복의 설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밥은 누구나 싫증이 나지 않고 매 식사 때마다 식탁에서 먹게 됩니다. 먹어야만 또한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주님의 진리는 늘 반복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설교와 교훈은 새로운 진리를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사람에게 생각나게 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2) 특별히 선지자의 예언과 사도들을 통해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명기시키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은 우리 주님을 예언하신 것이요 사도들은 주님의 명하신 것을 증명하니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예언, 사도들의 증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 복음을 증거하며 주 재림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일깨우기 위해 베드로후서를 기록한다는 베드로 설교의 원리와 목적을 말했습니다.

2. 재림의 부정 3-4절에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단자들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말 2:17의 말씀대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질문합니다. 베드로 시대의 이단자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4절 말씀에 예수의 재림의 약속이 어떻게 되었나 왜 지금까지 주님 재림이 임하지 아니하였나, 둘째는 그들의 조상이 모두 죽어 갔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영속되어 가는 우주이기 때문에 주님 재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고 주장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것은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긍휼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로서 사도의 증거와 선지자의 예언을 믿어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부활에 참예하는 축복을 받을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홍수에 의한 멸망 5-6절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영원히 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물이 영원히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베드로가 본문에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고자 함은 현대의 세계가 불에 의하여 멸망을 받게 된 것처럼 고대의 세계는 물에 의하여 멸망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주머니 속에서 육지가 나와 있습니다. 창 1:2, 6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라고 기록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함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물에서 창조되었고 물에 의하여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물에 의하여 고대 세계 (노아시대)는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주고 있는 경고는 이교도들은 우주는 안정된 것이며 변화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 위에 희망을 두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속고 있으며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세계는 물로 형성되었으며 물에 의하여 지속되어 왔으나 대홍수에 의하여 멸망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교도들의 희망은 좌절될 것이고 안정한 우주관은 거짓된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는 이 우주가 안정된 상태로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4. 불에 의한 파멸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고대세계가 물로 심판받은 것처럼 오늘날의 세계는 장차 불로 심판받을 것이라는 것이 베드로의 확신입니다. “하늘과 땅이 동일한 말씀으로”라는 말씀은 노아시대의 대홍수와 같이 미래의 불에 의한 파멸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은 불의 심판을 계시로 목격하였습니다. 요엘은 하나님이 피와 불과 연기기둥을 보여주실 때를 미리 보았습니다(요엘 2:30).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불이 삼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시 50:3). 이사야는 삼켜버리는 맹렬한 불꽃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사 29:6). 주께서 불과 함께 임하셔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을 책망할 것을 보았습니다(사 66:15-16). 나훔은 그의 목전에서 언덕이 녹으며 땅이 불타며 하나님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져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나 1:5-6). 말라기는 주의 날이 풀무불같이 탈 것이라 하였습니다(말 4:1). 이 불의 심판이 더딘 이유가 있습니다. 벧후 3:8-9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였던 것처럼 진실로 주의 날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으로 천년을 하루같이 단축시켜 주님을 속히 보내실 수 있는 것이나 오히려 하루를 천년같이 연장시켜 세계의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재림의 시기는 시일의 관계가 아니라 복음 전파와 아울러 구원의 수가 차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신자의 수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주의 재림은 매일 매일 가까워 올 것이니 오늘도 주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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