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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 (요일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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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12제자들 중에서 제일 늦게까지 생존하였으며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로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마음이 완고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의 어린 성도들에게 인자로서 대하였습니다. 1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들의 대언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대언자라는 뜻은 보혜사라는 뜻으로 보혜사의 원리와 대언자의 원리는 같은 것입니다(파라크레토스). 요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였습니다. 또 요 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 보혜사도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또 대언자라는 뜻은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빌려주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롬 8:34, 히 7:25, 히 9:24에 대언자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 혹은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설명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실 때부터 대언자의 사명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영원토록 변함없는 친구이자 구세주가 되십니다.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는 왜 화목 제물이 되셨을까요? 1) 온 세상 죄를 위함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은 온 세상을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하여 온 세상은 하나님 앞에 긍휼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2) 온 인류를 위해서입니다. 딤전 2:6에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의 은총이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불 하였기에 우리는 다만 이 사실을 믿음으로 대속함을 은혜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담당해야 할 죄 값을 예수께서 친히 담당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3) 죄 인들을 위해서입니다. 벧전 3:18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 하였습니다. 불의한 자들을 위해 대속하신 그리스도 앞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속죄의 공로를 입을 수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에게는 교양 있는 사람이, 로마인에게는 강한 사람이, 유대인에게는 종교심이 두터운 사람이 존경받고 영접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약한 자, 죄 많은 자, 무거운 짐을 진 자, 병든 자들까지도 영접되었습니다. 마 11:28-30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또한 그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이요 위로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4) 그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이나 특별히 그가 주시는 축복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가능성을 열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으심을 믿는 자에게 그 축복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많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하여도 이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널려져 있는 진수성찬을 구경하는 자가 아니라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며 즐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을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함을 주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역사를 제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만한 인간들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6절에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화평케 하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안에서 하나 되게 하고 그가 행하신 모든 행실을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려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대언자로서 변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화목케 하심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에는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고 새 역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의 물질도 생명도 아낌없이 희생하게 합니다. 또한 진실한 사랑은 허다한 허물도 가리우게 하나니 예수의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가리우게 하고 용서받게 하는 화목 제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화목케 된 우리는 또한 사랑으로써 형제와 이웃 간에 화목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대는 불화하여 전쟁과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 필요한 것은 불신과 의심 속에서 다투는 것을 화목케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주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화목 하는 것이 주님이 행하신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5절에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 하나님의 사랑, 저 안에 있음이란 세 가지 명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그 안에서 그와 영교를 가지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 수 있게 되며 온전한 사랑을 알게 되면 그가 행하신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여 예수와 영원히 함께 거하는 축복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님과 함께 거하시는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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