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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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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아름다운 대자연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이 만발 할 때 우리들은 감사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는 세상은 다른 의미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여기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을 떠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하나님 심판의 대상인 세상,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흑암 아래 있는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도 없고 신앙도 없고 현실에 있는 물질을 사랑하고 인간의 지식과 능력만을 의존하고 살아가는 오만한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들이란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라 불신 세상과 합치되는 철학, 사상, 인본주의 등 모든 것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을 본받거나 타협하지 말며 세상 관습에 얽매이거나 세상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하나님과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세상과 하나님을 다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약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 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세상은 어두움이요 하나님은 빛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함께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에 이르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므로 죄에서 구원함을 받고 세상과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도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둘째로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정은 하나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 속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거할 곳을 이미 세상에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증거요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2. 이 세상 생활의 세 가지 특징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세상 생활의 세 가지 특징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육신의 정욕은 육체의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부패한 도덕과 더러운 죄악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탐욕 등을 말합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곡간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고 여러 해 동안 쓸 곡식과 물건이 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로 안목의 정욕은 보는 것으로 유혹을 받는 죄악인데 사치와 안락으로 파생 되는 죄악을 말합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교회 건물 내에 다방이 있고 백화점을 차려 놓고 경영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 교회 같은 데서는 댄스홀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안목의 정욕으로 세속화 되어 가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 본능을 보면 종교적인 면은 진, 도덕적으로 보면 선, 예술적으로 나갈 때는 미라고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심미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써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학문을 하는 것, 예술을 추구하는 것, 연구를 하는 것 등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인간의 관능적인 만족, 향락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이것은 안목의 정욕으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리를 추구 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고 선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안목의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생의 자랑으로 일종의 허영심이나 교만한 마음입니다. 또한 없는 것을 있는 체하며 자랑하고 과장하여 남을 무시하는 독단주의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더욱 집착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무상한 물질의 풍요함을 믿고 뽐내거나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어리석은 것입니다. 종교가들에게는 자의적인 경건의 자락이 있을 수 있고 정치가들에게는 권력의 자랑이 있을 수 있고 학자들은 지식의 자랑, 예술가에게는 미에 대한 자랑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거지가 부자 집 옆을 지나가다 높은 담장에 철조망을 쳐놓고 있으면서도 밤에 도적이 들어 올까봐 무서워 잠을 못자는 것을 보고 자기 아들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했으니 다리 밑에서 편안히 잘 수 있고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 너는 아버지 잘 만난 덕인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처럼 심지어 거지들까지도 제 잘난 멋에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자신의 키를 한 치도 더 크게 할 수도 없으면서 세상에서 잠시 소유하는 것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자랑하는 것은 다 교만한 죄인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무시할 때 생기는 어리석음의 소치인 것입니다.

3. 영원을 추구하라 요일 2:17에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정욕은 확실히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하는 매력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세력에 매혹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교자가 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생의 자랑도 다 사라져 가게 됩니다. 이것들은 영원하지가 못합니다. 꽃이 피면 질 때가 있듯이 모든 것은 전성기를 지나면 사라지게 됩니다. 연로하신 어르신네들도 과거에 꽃 같은 얼굴에 싱그러운 젊음을 가지고 청춘을 자랑하였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주름이 가득하고 쇠약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사라지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은 잠시 잠간의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영원무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요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따라서 예수 안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육신의 정욕, 세상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이 세대에서 사라져 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때까지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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