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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이 생명이라 (요일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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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생명이란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의 문학가 톨스토이는 인생의 참된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지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이란 고난의 여정이요 생명은 이를 극복하려 몸부림치다 소멸하고 마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인간은 인생의 허무함을 알면서도 생명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생명이 무엇이며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생명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부자의 생명관 우리는 눅 12장에서 부자의 생명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풍년으로 인해 곡식 창고를 확장하고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채우고서 오직 먹고 즐기고자 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의미를 먹고 즐기는 것으로 여기고 재물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 존재로 타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 먹고 즐기기 위해 사는 인생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시길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느니라하십니다. 이 부자는 자기만을 위하여 재물을 많이 모아두고 즐기고자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취해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 재물을 하나도 그는 사용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1923년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호텔에서 미국의 갑부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기 모인 8명의 갑부들은 미국에서 가장 큰 제철회사, 전업사, 주유소, 뉴욕 증권회사 사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재산은 무지 막대한 것으로 미국무성의 재산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돈을 버는데 천재였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력을 증가시켜 갔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의 생은 전혀 다른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전에 부요함을 생각할 때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제철회사 사장이었던 찰스 슈밥이란 사람은 많은 빚으로 인해 생계를 겨우 꾸려가다 5년 후에 죽었으며 전업사 사장이던 사무엘이란 사람은 외국으로 망명하여 돈이 다 떨어진 후 고독하게 죽었고 주유소 사장인 호와드 홉슨은 파산하여 죽었고 그 밖의 다른 사람도 다 망하여 자살하여 죽거나 정신병원에서 외롭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자의 생명관은 정말 부질없는 것입니다. 어찌 없어질 재물에 생명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은 어리석은 부자를 비웃으시며 사람의 생명이 재물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생명의 가치란 사라질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2. 탕자의 생명관 눅 15장에 탕자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을 다 팔아 도시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사는 맛에 생명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부모의 간섭이 싫었고 힘들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이 지겨워져서 자기 본위대로 살아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습니다. 그리하여 쉽게 돈을 벌고 마음껏 자유롭게 살려고 부모 곁을 떠났지만 얻은 것은 일시적 향락뿐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자 그에게는 배고픔이 다가와 쥐엄 열매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품안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드 1세 여왕은 그의 영토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울 정도로 부귀영화를 소유하였지만 그가 죽을 때 자신의 생명을 한 시간만이라도 더 연장해 준다면 그 영화를 다 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연장되지 못하고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보시는 생명관 잠언에 보면 “대저 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입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욥은 생명의 가치를 올바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는 슬하에 10남매를 두었고 양이 칠천 마리, 약대가 삼천, 소가 오백, 암나귀가 오백이었으며 종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그와 같은 부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물질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시험으로 그 많은 물질과 자녀를 다 잃고 자신의 몸에 몹쓸 악창이 나서 가려워 기와 조각으로 긁으면서 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였으면 그의 아내까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을 저주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생명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고난을 잘 감당하여 극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더 많은 물질과 자녀들을 주시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에 당하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위대한 승리를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난할 때의 좋은 신앙이 돈을 떨면 사라지고 처녀 시절에 좋던 믿음을 시집가면서 다 팽개치고 학창시절 좋던 신앙을 사회인이 되면서 상실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욥과 같이 백절불굴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명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도 욥과 같은 생명관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아울러 축복받는 삶이되시길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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