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 받은 자의 기쁨 (계 07:15-17)

첨부 1


15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 영광 중에 섬김 충성된 자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마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성실한 자는 장차 올 세계에서 하나님의 존전에 더 가까이 나아갈 권세를 갖게 됩니다. 여기에 의미심장하게 숨기워진 사실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일입니다. 이제 15절에 하나님 앞과 보좌 앞의 환상은 우리가 9절에서 보았듯이 세계 모든 족속과 민족과 백성에 서부터 모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실로 근본적인 변혁을 의미합니다. 이 지상의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이방 사람은 누구나 이방인의 뜰 이상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울타리를 넘는다는 것은 죽을 죄를 짓는 것이고 울타리에도 그렇게 쓰여진 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더 나아가 여 자의 뜰을 지나 이스라엘 뜰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이스라엘 남자라도 범할 수가 없습니다. 그 너머는 제사장의 뜰이며 그 뜰에는 보통 사람은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을 위한 곳이며 또 제사장만을 위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성전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의 존전에 들어가는 길은 모든 이방인과 모든 족속에게 열려 있습니다. 제 사장 이외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을 없애버리고 모든 충성된 자들은 하나님의 깊은 임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종족과 국경의 차이, 계급의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충성된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교로써 구원 얻은 영은 직접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여 그에게 예배드릴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구원 얻은 영 들은 안일 중에서 구원 얻은 것이 아니며, 도피 중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저들은 고스란히 전부를 희생하여 피 흘리며 목베임을 당하는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저들로 하여금 보다 더 앞서게 합니다. 안일한 생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 정신의 탈선이요 타락입니다. 어떤 불행이나 고통도 대담하게 정복하려는 기백이 십자가의 영광이요, 항상 성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자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것이며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출 24:16-18에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라 함은 곧 영광으로 꽉 차 있는 보좌입니다. 출 40:34-36 성막의 경우에도 구름이 성막을 덮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 때문에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냈습니다. 대하 7:1-3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그 안에 가득 차 있어서 제사장들이 그리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영광 의 장막을 충성하는 자 위에 치신다는 축복을 허락했습니다.

2. 복있는 자의 기쁨 16-17절에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 구절이 있기 때문에 계시록을 읽는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슬피 우는 때와 죽음의 시간에 이 구절에서 위로를 발견한 사람은 상살 못할 만큼 많은 것입니다. 여기에 영적 약속이 있습니다. 인간 영혼의 주림과 목마름의 최종적 충족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 5:6에 “의를 위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요 6:35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셨고, 요 7:37 말씀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인간 영혼의 영원한 주림의 만족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마음은 그에게서 평안을 누릴 때까지는 불안한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 49:10에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이 구절에서, 또한 이 약속의 말씀에서 인간은 그 마음이 가장 갈망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약속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주림과 세상의 고통과 세상의 슬픔이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물을 씻어 주시며 다시는 어떤 비애도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요 15:11 말씀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 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히 기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3. 참 목자 여기서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양떼를 위한 사랑의 보살핌의 약 속을 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 40:11에 “하나님은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신다.” 요 30:11에 “나는 선한 목자라”고 그의 양떼를 보살핀다는 말씀들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양떼를 제멋대로 내버려 두지만 험한 광야와 야수가 많은 이스라엘에서는 목자가 절대로 양떼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목자는 밤이면 맹수가 울부짖는 고원지대에서 졸지도 않고 앞을 내다보면서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장도 하며 지팡이에 기대어서 그의 흩어져 있는 양을 바라보고 한 마리 한 마리 그의 마음 속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목자상을 보면 성경에 목자가 민족 역사의 맨 앞에 나오게 되는 이 유를 알 것입니다. 또 목자를 왕에게 비유하며 목자를 여호와의 상징으로 삼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여기 참 목자의 기능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십니다. 시 23:2,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도다.” 물이 없으면 양떼는 죽어갑니다. 또한 그의 인도로 생명수를 마셔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으십니다. 주께서 우리의 영육간에 영양을 주시듯 상한 우리의 심령도 위로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와 위로가 없이는 나그네 인생의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아니면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갈 기력이 없습니다. 참 목자 되신 예수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육신도 육신의 양식으로 먹이 시고 우리의 영혼도 신령한 양식으로 배불리 먹여 마음에 위로를 주십니다.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