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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논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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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가장 처절했던 전투ㅡ하면 9일간 지속됐던 진주성 전투를 연상할 것이다. 그 전투에서 조선 측 인명 피해만도 6만명을 헤아렸으니 짐작할 만하다. 당시 종군 기록인 「일월록」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촉석루에서 남강 언덕을 타고 쌓인 시체가 서로 겹치고 청천강에서부터 무봉에 이르는 5리 길 사이에는 시체가 강을 덮어 떠내려가고 있었다. 」 이 전투에서 끝까지 버티고 싸운 지휘관이 경상우병사 최경회였다. 12만 대군에 포위되어 촉석루 인근 남강전선에서 끝까지 버티다 잡힌 몸이 되느니 남강에 투신해 순절한다. 그의 시체가 인양되었을 때 그의 몸에는 왜적에게 빼앗기기 싫은 관인이 인끈으로 칭칭 동여매 있었다 한다.

진주 교외 의속사에 피란가 있으면서 보고 들은 왜적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던 논개는 섬겨왔던 최경회의 순절 소식을 듣자 비장한 각오를 한다. 전승에 겨운 왜군의 장수들은 마치 칠석 명절을 맞아 촉석루 앞 남강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어우야담」에 보면 논개는 곱게 차려입은 자색에 홀린 왜장들의 유인으로 강복판 너럭바위에서 벌어진 술자리에 잠입할 수가 있었다 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왜장을 끌어안고 흐르는 남강에 투신, 나라의 원수를 갚고 순절했다.

아녀자는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일부종사, 정절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전통사회의 일이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야 할 사회층에 속한 몸도 아닌 나어린 여인이 발휘한 의와 열은 이기주의와 자기본위로 치닫는 현대에 의미있는 정신 방사능을 방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현대는 두드러지게 큰 인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착근은 자신이 처한 작은 영역에서 도의와 정의에 맞는 일이면 몸을 사리지 말고 또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이해의 타산 없이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 되살리고 싶은 논개정신이다.

논개가 태어난 생가를 복원하고, 논개가 살았던 장수에 논개사당을 정화, 공원화하고 있는 장수군에서는 성역화라는 유형 추모에 그치지 않고 어제 그 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무형 추모를 위한 논개정신선양회를 발족했기에 젊은 순국여인에게 각광을 비춰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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