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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론 멸망의 모습 (계 18: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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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후의 비극 21절에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고 했습니다. 바다에 던진 돌은 바다가 삼켜 덮어버리니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예레미야가 예언하길 렘 51:63-64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하수 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후일에 헬라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는 고대 바벨론에 관해 말하기를 그 성이 얼마나 완전히 폐허되었던지 “아무도 이 황야에 한때 큰 도시가 서 있었다고 감히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바벨론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쑥밭이 되었습니다. 사 34:10-15에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건이라‥‥ 국가를 이으려 하여 ‥‥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고 했습니다. 중국 은나라 충신 기자는 타락하는 주왕에게 충의로써 간했으나 듣지 않고 죽이려 하자 머리를 풀어 헤치고 거짓으로 미친 시늉을 하고 남의 노예가 되어 숨어 살면서 가슴 속으로만 슬픔을 하소연하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후 은나라가 망하고 기자는 은나라의 옛 터를 지나면서 웅장했던 옛 궁실이 황량한 페허가 되고 오직 벼와 수수가 우거진 쓸쓸한 모습 된 것을 목격하고 비애를 금치 못하여 맥서가(보리싹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은의 옛 서울엔 보리싹만 푸르고 궁터에는 기정만 무성하구려. 교활하던 주왕은 한심도 하지. 내 말을 듣지 않아 이 모양일세. 그 당시에 이 노래를 들은 사람 중에 울지 않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 47:8-9에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찌어다 한 날에 흘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바벨이 이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죄가 주는 파괴는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깊은 바다에 빠지고 집 마당에 풀의 흔적도 없어지기 전에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2. 환락의 종결 22-23절에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떤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 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1) 노래 소리가 없어진다 했습니다. 거문고와 풍류 소리로 환락을 즐기던 바벨론에 이제 노래가 없어지리라 한 것은 영원히 노래가 없는 지옥과 같아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2) “어떤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 보이지 아니하고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는 소리를 없애 인간이 사는 즐거움이 없어져서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3) “등불 빛이 네 가운데서 다시 없을 것이라” 함은 암흑 속에 빠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4)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다시는 없으리라” 함은 모든 기쁜 소리를 다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리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말은 영화와 환란의 그 큰 도시 바벨론은 어디에 있었는지 흔 적도 알 수 없게 소멸되리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무서 워하는 죄의 결과는 전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모든 것을 잃더라도 결국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항하던 자랑과 영화에 쌓였던 바벨론은 오늘날 하나의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24절에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 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이 저주받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만 축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에게 하신 축복이요, 하나님 백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자녀를 박해하고 교회를 해롭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의 대상으로 심판하는 악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바벨의 멸망 모습 한때는 불신자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신자가 불신자와 같이 고난을 받는 일도 있지만은 최후 심판에는 반드시 죄인과 의인이 분리되고 신자와 불신자가 갈리어지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나님 대신으로 나타나며, 천사가 나타날 때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환해지는 것입니다. 영광중에 나타남은 하나님의 공의가 조금도 흐리멍텅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중에는 무엇을 분별키 어려우나 밝은 낮에는 모든 것을 확실히 분별함과 같이 온 땅이 환하매 심판이 광명 정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행한 그대로 보응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키 위하여 바벨론을 들어 쓰신 바 있으나 바벨론은 너무 포악한 행동으로 선민을 가해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학살했으며 성전을 훼파하고 선민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한 것을 갑절로 갚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섞는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섞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독주에다 물을 섞는 것이 아니고 독주에다 더 독한 독주를 섞었습니다. 분명히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모든 왕을 패하여 하나님을 배반케 했으니 과연 멸망을 자취하는 행사요 망할 세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도 그의 진노의 잔에 갑절을 섞어 주실 것입니다. 옛날 바벨론에서 풀무 불에 들어갔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는 평일보다 7배의 열을 가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7배의 불보다. 70배에 7배를 가한 불보다 더 뜨거운 불로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 그는 포악한 심정으로 음녀의 자격을 자칭하나 하나님은 강한 심판주로 나타나 음녀의 머리를 부술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왕들이 애통하겠고, 상고들이 애통하겠고, 선장들이 애 통하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죄인과 함께 멸하지 않으십니다. 노아는 물 심판에서 구원받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의인 열명이 없어 소돔은 멸망당한 것입니다. 진실로 의인은 죄인과 함께 멸망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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