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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에서 건지소서 (시 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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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에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하는 이 세대는 세계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공포의 세대입니다. 언제 이 지구상에는 전보다 더 큰 어려움이 일어날런지 공포와 불안 가운데 쌓여 있습니다. 오늘 이 땅 위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장래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치 컵 안에 맑은 물이 가득 들어 있는데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한 방울의 잉크라지만 삽시간에 그 컵 안에 물을 잉크색으로 물들이고 맙니다.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두려움은 성공적인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적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치고 그 하는 일이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인간이 범죄 하면서부터 생겼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불순종한 아담, 하와 때부터 들어온 것입니다. 창 3:8에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날로부터 두려움은 인간 누구에게나 따르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로서 두려움이었고, 청년 시절에는 청년으로서 두려움이 있으며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도 두려움은 있습니다. 물론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 두려움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깊은데 들여다 볼 때 흑은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나 낮선 사람을 만날 때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은 우리 생명을 보호하는데 퍽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마땅히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독소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볼 것도 바로 보지 못하고 들은 것도 바로 듣지 못하고 말할 것도 바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심리는 마비되고 맙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의 건강에도 얼마나 해로운지 모릅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이 꼭 병균이나 부상을 입어서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심리적인 두려움으로 인해서 오는 소위 기능적 질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신경계통의 병, 소화기 계통의 병, 심장병 같은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쌓여서 오랫동안 근심과 염려로 쌓여 얼마동안 지내다보면 그 사람의 심령이 쇠약해지고 예민해지고 심하면 히스테리 병이 들기까지 합니다. 결국 사람이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심리 상태와 육체까지도 점점 마비가 되어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두려워 할 이를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두려워 할 분이누구입니까?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시 103편의 감사의 시 가운데 다윗은 세 번씩이나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 그 열쇠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장래를 지킵니다. 만일 우리가 다가오는 앞날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두려움 가운데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 없이 세상을 근심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살아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뢰하십시다. 하나님만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시 23: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 27:1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 56:3에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시 112:1, 7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이 한 해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승리하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십시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그의 인도하심만 따르십시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1) 궁핍의 두려움입니다. 세상사는 동안 굶주림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경제적 안정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시 37:25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예수 잘 믿으니 거지됐다면 잘못 믿음 가졌을 것입니다.

(2) 고난의 두려움입니다. 고난은 어려운 것입니다. 육신적인 고난이나, 영적인 고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병이나 슬픔을 두려워합니다. 고독과 실패를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에게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되게 하십시다. 사도 바울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무척 괴로운 것이지만 그를 통해서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는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고난기가 있어 세 번이나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시 50:15에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실패의 두려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에 성공적인 삶의 세 가지 법칙을 말했습니다. 1) 전진하라. 2) 하나님을 신뢰하라.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너와 있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4)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모든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끝을 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 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히 죽음이 필요 없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두려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을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니다. 단 우리가 그를 믿을 때 건져 주십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과 믿음, 어느 것을 택하든지 여러분 자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서 모든 두려움의 세력에서 건짐 받아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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