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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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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님이 하시는 것을 늘 보았다. 저희집에는 언제나 성미통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예쁜 나무로 잘 짜서 곡간 앞 바람벽에다 붙여놓았다. 이제 밥할 쌀을 푼다. 어머니가 퍼가지고 나오실 때에 거기 딱 서시고 식구 수대로 숟가락으로 떠넣으셨다. 그렇게 한 다음에 나머지를 가지고 가셔서 밥을 하신다. 하루에 세 끼든 네 끼든 꼭꼭 그렇게 하셨다. 그 통이 여러 개였다. 왜 여러 개냐 하면 한 통에는 쌀, 한 통에는 보리, 한 통에는 팥, 한 통에는 콩... 그렇게 담아야 되니까. 이렇게 해서 일주일이면 상당한 양이 되고, 그것을 자루에 담아 '성미자루'라고 해서 교회 갈 때에 들고 간다. 교회에 가서 쏟아 놓고는 다시 자루를 가지고 온다. 주일마다 성미자루 꼭 가지고 다녔다. 한평생 그렇게 하셨다. 성미란 '가난한 자를 잊어버리고는 절대로 식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헌금이 아니고 연보이다. 꼭 구제하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자를 잊어버리고 식사하는 일이 없습니다' '내 식탁에 매일같이 가난한 자를 초대합니다'하는 뜻이다. 그것이 성미의 본래 의미이다. 그런데 이게 좀 잘못돼가는 바람에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본래 가난한 자에게 주려고 시작했던 것인데 좀 여유가 없어지니까 목사님의 식량으로 드리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목사님네는 언제나 잡곡만 잡수시게 됐다. 이런 쌀 저런 쌀 다 섞은 것이고보니 목사님네 식사가 제일 엉망이게 됐다. 그런데다가 마치 내가 목사님 식사 때마다 밥 대접하는 것 같이 되고 해서 어쨌든 목사님네는 어려웠다. 그래서 더러는 내다 팔다가 들켜가지고 교인들한테 비난받고 했다. 잡탕 곡식이 먹기 싫다고 어느 사모님이 내다 팔고 다른 것을 사왔다. 그래놓으니 '성미인데 그걸 잡수셔야지 그걸 내다 팔다니'하고 비난받는 목사를 보았다. 어쨌든 본래의 목적은 목사님 드리라는 게 아니다. 구제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웠던 풍속인데 이제는 다 없어졌다. 성미가 없으면 대신 하는 것이라도 있어야겠는데 흔적도 없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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