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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 교회 (출 1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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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교회의 형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의 생활 동안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는 다만 조직적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모형 내지는 상징적 의미를 보여 줄 뿐입니다. 오늘 수리는 이 광야 교회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친교 본문의 서두는 모세의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대동하고 이스라엘 광야 진지로 내방한 사실부터 시작됩니다. 모세가 출애굽 한 후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 가족들과의 재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를 만나고 다정한 인사를 교환한 후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출애굽에 관한 전후 사실을 다 고하였으며 이드로 역시 이를 기뻐하며 여호와를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교회가 어떠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친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호렙산에 설치된 모세의 장막에서 회후의 기쁨을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종족와 국경을 초월한 범세계적 성격을 띤 친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모세의 두 안들 이름에서 잘 들어나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의 외로운 망명 생활에서 십보라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 지었는데 게르솜은 “내가 타국에서 손이 되었다”이라는 의미로(출 2:22) 자신의 나그네 신세를 반영시킨 것입니다. 또한 엘리에셀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출 2:5-10). 나그네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기억하고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들은 모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외에도 이방이라 할지라도 큰 의미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히 미디안의 제사장과 친교를 이루고 있음은 종족과 국경을 초월한 친교가 모세의 장막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종족과 국경, 가난한 자와 부한 자 등의 구별이 없이 친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2. 헌물, 헌신, 헌심 이드로는 이방인이었지만 저는 모세로부터 출애굽 사역에서 나타내신바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와 베푸신 은혜에 관하여 전후 사실을 다 듣고는 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심으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11절 ) 이드로는 이교도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개종한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친히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왔으며 제사 후에는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떡을 먹으며 친교를 맺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했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이스라엘의 장막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교회의 사명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 곧 예배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에게 헌납되어지는 것입니다.

3. 봉사 우리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의 발단과 새로운 직제의 창안, 그리고 직능의 분화 등을 보게 됩니다. 이드로는 모세가 백성들의 시비를 재판하느라고 혼자서 종일토록 직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유능한 관리를 등용하여 이를 담당시키고 중요한 일만을 직접 처리하도록 하라”고 권장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을 옳게 여겨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쉬운 일은 이들로 분담케 하고 어려운 일만을 모세가 친히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이드로에게서 그릇된 태도를 발견합니다. 이드로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17-18절에 기록되었듯이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드로의 언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지도자 모세에게 대하여할 수 있는 말투가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모세의 장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는 영광스런 지위에 있는 모세에 대하여 “그대의 하는 일이 선하지 못하느니”, “혼자 할 수 없느니” 등의 말을 감히 할 수 가 있겠습니까? 이는 세상에서 인생의 경험을 많이 가진 자가 인간적 견지에서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나 결코 참된 신앙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란 불가능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제안을 받았으나 과연 지도자 될 큰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어쨌든 모세는 80세 이상의 노쇠한 몸으로 온종일 직무에 시달리는 것에서 어느정도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충실한 봉사자들을 통하여 보존 유지되고 또한 발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회자의 기능을 대신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의 봉사는 어디까지나 질서 가운데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친교와 예배, 그리고 봉사가 잘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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