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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룻의 결심 (룻 0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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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는 우리 조국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괴테는 자신의 인격은 어머니의 덕분이라 하였고, 칸트는 자기에게 신념의 씨를 심어준 분도 어머니요, 자연계의 신비에 대해 마음를 열어준 분도 역시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선더싱은 “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것은 어머니 품 ” 이라고 했습니다. 웨슬레 어머니 스산나는 자녀들의 경건과 신앙생활에 전념하므로 챨스 웨슬레, 죤 웨슬레와 같은 위대한 목사를 배출했습니다. 스펄존은 어머니께서 날마다 가정 예배 때 좋은 말슴을 가르치므로 후에 영국에서 제일 영역있는 스펄존 목사가 탄생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위대한 여성의 결심을 보여줍니다. 모압의 유래는 창 19:37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동과 고모라의 멸망시 롯의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룻의 아내는 불에 타는 소돔 고모라를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은 두 딸을 데리고 피난을 갔는데 딸들은 남편을 구혼할 자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이렇게 시작된 민족이 큰 딸은 모압의 조상이 되고, 작은 딸은 암몬 조상이 된 것입니다. 모압은 불륜의 후손이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온 민족입니다. 이곳에서 나오미는 며느리를 구한 것입니다. 나오미, 오르바, 룻 이 세 과부가 이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할 때 나 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러 놓고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오르 바는 모압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오늘 본문 말씀대로 룻 1:16-17에 “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게 강권 마옵소서 어머니 게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시나이다 ” 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그 사람의 결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들 못 낳은 한나는 성전에서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 주실 때 까지 성전에서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기도한 결과 사무엘이란 아들 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주기로 결심하고 실행한 결과 여리고가 함락되고 붕괴될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삭게오는 예수님을 만나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기까지 힘썼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부름을 입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심에서 나옵니다. 결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결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하는 결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충성하는 결심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결심을 통하여 큰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능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겠다고 하셨습니다. 룻이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국적을 바꾸었다는 것은 세상의 호적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천국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의 결심은 죽음까지 결심했습니다. 죽음을 결심하면 무서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대한 결심이 더 귀한 줄 알아야 하며, 룻과 같이 이런 신앙의 결심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룻이 결심을 통해서 참된 여인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룻에게 인정의 미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룻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 한다는 윤리감에 앞서 인간으로서 볼 수 없는 인간성의 미를 가졌습니다. 시모와 생사를 같이 하려는 굳은 결심으로 베들레헴까지 왔고 시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들에 나가 보리 이삭을 주웠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에는 외적 미와 내적 미가 있는데 룻의 외적 미에 대해서는 성서에 밝힌 바 없으나 단정하였으리라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어쨌든 그녀의 마음의 미는 룻기 전체에 풍긱 있습니다. 이상적인 여인상은 용모의 미보다 마음의 미에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벧전 3:3-4에 “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용모의 미는 한 때 남자의 마음을 잡지만 일시적이므로 권태를 가져오나, 마음의 미는 솟아나는 샘물처럼 쉬지 않고 남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달래며 사로잡는 것입니다. 룻은 인정미가 넘치는 미와 효심의 미까지 겸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아내는 가정의 보화요, 가문의 보석입니다. 룻은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2. 룻의 정조의 미가 승화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편단심으로 한 번 먹은 마음을 끝가지 지켜나간 정조의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미망인으로 유대인 속에 남아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불행한 시부모와 관계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이제는 아무런 봉양해야 할 의무도 없는 시모에 대해서 정조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정조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실했습니다. 한 번 세운 뜻을 끝내 지킨 의지의 여인이요, 정조의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의 특색은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정조라는 기초에서 비로소 승화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정조관념이 희박합니다. 정조는 반드시 성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에 대한 신의, 자신의 사명감에 대한 충실 역 시 정조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세겔에 스승을 팔았 던 일이나,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 등도 정조를 판 행 위입니다. 인간은 정조가 유린당하면 동물 이하의 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정조는 귀합니다.

3. 룻의 신앙의 미가 빛나고 있습니다 17절에 “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앞서 열기한 그녀의 인정의 미나 정조의 미도 여기 신앙의 미에 근거하며 또 결심했다고 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신앙의 미보다 물질, 과학, 대중의 교류로 하나님을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등지고 신앙에 만 살았습니다. 룻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한 우물만 팠 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흐르는 생수를 얻은 여인이 된 것입 니다. 룻은 한 번 지워진 운명에 충실했습니다. 한 번 만난 시모에게 최선 을 다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인정을 담았고, 정조를 다하고, 신앙을 다했습 니다. 그 결과 영원히 불멸하는 축복으로 본을 받았습니다. 룻은 영원히 귀 감이 될 이상적 여인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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