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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쓰십시오 (롬 14: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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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대통령이 퇴임 후에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역가운데 하나가 해비타트 사역입니다. 집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역입니다. 작년8월 5일부터 일주일간 한국에서도 이 행사가 있어서 지미 카터가 내한한 일이 있었고 호서대학 정근모 총장 등이 이일에 헌신하고 있고 우리교우들 가운데도 이 사역에 헌신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망치를 들고 못을 박으며 일을 하는 카터에게 '일하는 소감'을 물었을 때 그는 "나는 한채의 집을 지을때마다 단순한 빌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세워주기 위해서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본문19절에서는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고 했고,이미 4절에도 연약한 자들이 주님에 의해 세움을 받아야 한다고 기록한바 있습니다. 여기에 쓰여진 '세움'이라는 단어는 본래 희랍어에 '오이코 도메'라는 단어인데 오이코는 '집'(home,house)이라는 뜻이고, 도메(도메오)는 '세운다'(build)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는 일은 이웃의 집을 세우는 일과 같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들에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는 마치 이웃을 파괴할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마치 이웃의 집에 불을 질러 태우는 방화범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웃을 허는자 이기를 원하십니까? 세우는 자이기를 원하십니까? 세우는 사람이기를 원하신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웃을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1.서로서로 판단치 말아야만 합니다.롬14:1-12까지에는 소위 그리스도인이 자유할수 있는 삶의 영역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유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의견을 달리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혹은 어떤 특정한 날을 지켜야 하느냐 지키지 말아야 하느냐 등의 문제들입니다. 지금도 신앙의 본질문제가 아닌 이런 자유할수 있는 영역의 문제들로 인하여 언쟁을 하다가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깨어지는 경우들을 흔히 볼수 있지 않습니까!어떤 교회가 열심히 교회당 건축해 놓은 후에 깨어졌는데 원인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커텐 색깔 가지고 싸우다 갈라졌다는 것이에요. 어떤 미국교회에서 싸움이 났는데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가 보신탕 먹었다고 간증한후 이런 선교사를 계속 선교사로 인정하고 후원 할 것인가 말것인가 가지고 싸우다가 갈라졌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모든 비본질적 주제에 대한 논쟁들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본문13절에서 "서로 판단치 말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이런 논쟁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문제로 어떤 형제를 근심케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5절 말씀이 바로 그 증언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그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세우는 일입니다.

2.믿음강한 성도가 양보해야 합니다.로마서 14:2에 의하면 모든 것을 먹을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고 채소만 먹는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다른 문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주초문제가 신앙의 수준을 정하는 규례처럼 되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담배문제는 성경에 기록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혹시 어떤 교우들에게는 충격이 될지 모르지만 저 설교의 왕자로 일컬어진 스펄존 목사님이 골초였습니다. 한번은 심지어 그의 교회 근처의 담배가게가 선전을 하기를 "스펄존 목사님이 잘 피우는 담배를 파는집"이라는 선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누군가가 스펄존 목사님에게 전하자 그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러면, 이제는 내가 담배를 끊을때가 되었군요"라고 말씀하시더니 실제로 담배를 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교회 스&53494;이 "목사님이 담배피우는 것이 늘 신앙의 본질문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왜 끊기로 하셨느냐?"고 묻자,"나는 상관이 없는데 나 때문에 여러사람이 피우게 되고 건강을 해하게 된다면 내가 삼가야 하겠지요"하시더랍니다. 20-21절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거리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담배도 피울 수 있는 믿음이 강한 스펄존 목사님이 담배는 피우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담배를 거리낌으로 대하는 믿음 약한 성도들을 위하여 담배를 포기하신 것입니다.이런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우리집에 아름다운 예술적인 누드화를 선물했다고 하십시다. 예술적인 조예가 있는 저희 부부는 이 작품을 예술적인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미적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집을 방문하는 미적 안목이 없는 성도는 외설적인 것을 걸어놓았다고 시험을 받을수도 있을 것입니다.(사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요즈음 유머에 예술과 외설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보고나서 눈물이 나면 예술,군침이 돌면 외설/애인과 볼수 있으면 예술,친구와 보는 것이 편하면 외설/보고나서 마음의 변화가 생기면 예술,몸의 변화가 생기면 외설/비디오를 빌려주어서 돌아오면 예술,안돌아오면 외설이랍니다.)어떻게 할까요? 본문의 원리에 따르자면 나는 이것을 예술로 감상할 수 있어도 다른 이들이 외설로 오해한다면 이웃을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 것인가가 아니라, 형제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때에는 언제나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대부분 우리들의 신앙의 논쟁의 자리에 들어가 보면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 껍데기를 가지고 논하다가 열올리고 열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형제들의 목장에서 정치문제, 요즈음은 경선 문제가 화제에 올려 질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배경, 출신지역, 인생경험에 따라 우리중엔 과거를 타파하기 위하여 기존질서에 노를 선포하는 ,노풍을 타는 사람도 있고, 이씨조선의 복귀를 노리는 이풍을 타는 분들도 있을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안에는 여도,야도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우리들의 교제에 상처를 받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문제를 피해가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교제의 깊이를 더해 갈 수가 있을까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입니까?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어떻게 의롭게 살고, 평화롭게 살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느냐-거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망치를 들고 집을 짓는 지미카터에게 "대통령을 지낸 분으로 이런 일을 하시는 소감이 어떠한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통령후에 이런 일을 하라고 대통령을 시킨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의 가치는 대통령이 아닌 이웃사랑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분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눈물겨운 바램이 있습니다.)저는 오늘의 메시지를 해비타트운동 즉 사랑의 집짓기운동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본래 이 운동은 밀라드 풀러라는 변호사이자 사업가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 28세에 백만장자가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이혼선언을 하고 그에게서 떠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돈이 전부인줄 아는 남편의 인생에 환멸을 느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진지한 신앙을 찾기 시작했고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별히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일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의 클래런스 조던 박사가 이끄는 코이노니아 농장을 방문하고 인종을 초월한 공동체적 신앙생활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옵니다. 그는 돌아오는 즉시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고 곧 자기의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살던 집을 제외한 일체의 재산, 자동차, 보트, 자가용 비행기 모두를 팔아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역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졸지에 백만장자에서 빈 털털이가 되었지만 그는 행복을 찾았고 삶의 참된 가치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수여 받고, 말틴 루터 킹 인도주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비타트 관계자는 그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그는 욕심을 버려, 하나님을 만났고, 물질을 포기하고 가치를 발견했고, 특권을 포기하고 행복을 얻었으며, 자신을 버려 이웃을 찾았고, 쾌락을 잃어버리고 영향력을 남길 수 있었다"고. 저는 이 말을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특권과 물질을 포기하고 이웃을 구원하고 세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삶이 아니었습니까! 그의 희생, 그의 피 흘리심, 그의 섬기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여러분과 저라면 이제는 우리가 이웃의 덕을 세워야 할 차례입니다.밀라드 풀러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의 신학을 가르켜 '망치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합니다. 로마의 병정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망치로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깨닫고 새삶을 체험한 그는 새로운 섬김의 망치를 들고 이웃의 삶을 세워주는 일생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지미 카터도, 정근모 박사도 이제 사랑의 망치를 들고 이웃의 집을 세우고 그들의 새인생을 세워주는 일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힘겨워하는 이웃들을 세우기 위해 꼭 망치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목장안에서의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정겨운 악수, 중보의 기도, 소리없는 미소, 변함없는 관심--이 모든 것으로 우리의 이웃들은 새 인생의 집을 지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서로가 서로를 세워가는 인생을 사모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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