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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모시는 신앙 (막 0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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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또 예수님을 만났으나 돌아 선 부자 청년과 다메섹 도상에서 음성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 등 수많 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예수 님을 만났다고 다 축복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면, 예수님을 믿 고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인생과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인생은 전혀 다릅니다. 그저 예수님에 대해 학문적으로만 많이 아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예수님을 모신 것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 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을 모시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내”가 주인이나, 예수 님을 모시는 것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인생은 성령과 말씀의 역사가 있습니다. 2천년 전 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인생은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듣고, 전하 고, 실천합니다. 또한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해서 은사와 열매가 나타납니 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셔서 장모의 병을 치유 받았듯이, 역사가 일어납니 다. 그러면,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 가 일어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문제가 해결된다 내 삶에 예수님을 모시면 문제를 해결받습니다. 산다는 것은 문제와 함께 사 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문제가 없는 개인, 가정, 기업체, 공동체는 없습니 다. 문제가 없는 곳을 찾으려면, 공동묘지에 가야 합니다. 문제를 피하려고 하 면 더 큰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 리는 문제를 가져다주는 환경과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문제 를 두려워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을 모시면 됩니다. 성도의 행복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닙니다. 성도의 행복은 문제의 해결자인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 힘으로 문제 를 해결하려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은 없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인생의 짐을 대신 짊어져 주겠다고 하지 않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43092;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 희를 쉬게 하리라&43093;(마 11:28)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인생 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의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자 장모의 열병이 치유되었습니다(막 1:29-31).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면,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와도 두렵 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43092;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 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 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43093;(고후 4:8-9)라고 선포합니 다. 주님을 모신 인생은 아무리 많은 적이 포위해도 자신만만합니다(왕하 6:16-17). 우리 모두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내 삶에 주인으로 모심으로 성공하는 인생이 됩시다. 둘째,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문제해결도 큰 축복이지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을 체험해야 문제해결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 도, 먼저 그 영혼을 사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1절에는 "그 손을 잡아 일 으키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8장 15절에는 같은 말씀이 "그의 손 을 만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매우 부드럽고 섬 세하게 그 손을 만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열병이 있는 자 와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랑의 손 길로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의 손 길로 그 영혼을 터치하자, 열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마 8:15상).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사랑의 터치로 우리 의 지친 몸, 상한 마음, 깨진 꿈을 치료하십니다. ‘성령의 터치’와 ‘말씀 의 터치’가 임하면, 절망의 사람이 소망의 사람으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꿈을 꾸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 을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결코 낙심할 수 없습 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 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사도 바울은 이 사랑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 한 것이며 정신이 온전하여도 여러분을 위한 것이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5:13-14; 현대어성경)라고 고백합 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이 사랑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요 일 2:15).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베드로의 장모처럼 예 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내 의지, 내 뜻, 내 방법을 포기하고, 예 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폭 포수처럼 부어주십니다. 셋째, 섬기는 자가 된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예수님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 도, 자원하여 섬기는 자가 됩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일평생 주님을 섬 기게 됩니다. 베드로의 장모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자,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 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 드니라"(막 1:31). 그녀는 열병을 앓느라고 기운이 없을 텐데, 예수님과 제자 들을 섬깁니다. 그런데 “수종드니라”를 헬라어 원형으로 보면 미완료 과거형 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계속” 섬겼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이후 물 심양면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섬겼을 것입니다. 여러 기록을 볼 때 계속 예수님 을 섬긴 것이 분명합니다(눅 8:3; 23:55-56). 은혜 받은 자의 증거는 섬김과 헌신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헌신하는 것 을 보면, 받은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남을 의식해서 헌신 하고 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것 은 날마다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 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성령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사 랑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과거만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첫사랑을 뛰어넘어 성 숙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영혼이 됩시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려면 날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악한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를 유혹해서 세상을 섬기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 나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는 사람다운 삶, 예수님을 닮아가 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야 인생의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입니 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는 신앙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 모두 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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