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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를 촉구함 (사 5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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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촉구함 이사야서는 회복과 구원에 관한 책입니다. 사실은 이사야서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주제가 회복과 구원입니다. 회복과 구원에는 전체 조건이 있습니다.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지만 회개 없는 구원과 회복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곧 시들고 다 사라지고 맙니다. 율법적 회개와 은혜의 회개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비유가 있습니다. 탕자는 자기 몫을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가지고 간 돈을 탕진하고 비참한 환경에 빠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회개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칫하면 회개를 은혜로 보지 않고 율법으로 보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참 회개는 하나님께서 하게 하십니다. 내가 회개하면 교만해집니다. 자기를 주장하게 되고 율법적이 됩니다. 회개하면 할수록 오만해집니다. 내가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율법적 회개’라고 말합니다. 율법적 회개를 했느냐, 성령에 의해 은혜의 회개를 했느냐는 중요합니다. 은혜의 회개를 하면 겸손해지고 온유해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는 축복의 자리로 가지만, 율법적 회개를 하면 회개가 자기 자랑이 되고 자기 의가 되고 자기 선행이 됩니다. 회개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는 영적 태도가 율법적 행위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령은 선물입니다. 성령은 내가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몸부림친다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만 아프고 괴로울 뿐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눈물도 나고 회개도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자기의 잘못, 허물, 죄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평화가 옵니다. 율법적 회개는 평화가 없습니다. 내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회개는 평화가 있습니다. 회개의 축복 1-정의를 행함 이사야서 55장은 하나님께서 먼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회복을 선포하십니다. 55장 6-7절입니다.“만날 수 있을 때 여호와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죄를 지은 사람은 그 길을 버리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그 생각을 버리라. 그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찾아라, 부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하면 회개가 역사합니다. 진짜 회개를 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내가 녹아지고 변합니다. 회개가 일어나면 56장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의를 지키고 정의를 행하여라. 내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내 정의가 곧 드러날 것이다.”(1절)참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납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내 안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삶에 공의와 정의가 살기 시작합니다. 개혁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다 부수고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결국엔 모두 다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혁의 주체가 되면 절대로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56장 1절 말씀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은혜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 말씀을 거부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편에 섰습니다. 같은 말씀인데 한 사람에게는 축복의 말씀이요,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 모든 불의, 어둠의 세력이 떠나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생각이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공허합니다.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말씀과 성령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공의롭고 정의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축복 2-안식일을 지킴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복되다. 이것을 행하는 사람아! 하나님의 정의를 꼭 붙들고 안식일을 지켜서 더럽히지 않고 손을 지켜서 어떤 악한 일도 행하지 않는 사람아!”(2절) 제가 처음 율법적 회개와 은혜의 회개를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율법으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사회가 변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율법이냐 은혜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은혜로 지킨다면 건강해지고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율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억지로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70년 동안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에 형식적으로 나오거나 믿음을 형식적으로 갖게 되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복을 주십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은혜다’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안식일, 십일조는 축복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구약의 이야기라고, 율법의 이야기라고 지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율법이냐 은혜냐 이방 사람이라도 여호와께 속했다면 “여호와께서 나를 그분의 백성과 차별하시는구나”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고자라도 “나는 마른 나무에 불과하구나”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여라. (3절)여러분, 우리가 진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신앙생활의 위기는 억지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내가 목사, 장로, 집사, 순장이니까 할 수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깊은 신앙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56장 3절에는 이방 사람이라도, 고자라도 안식일을 지킨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복과 똑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영적 태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6일을 축복 가운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대로, 하나님 중심대로 살지 않게 되면 영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들어가게 됩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돈이 필요해서 십일조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십일조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경제원칙입니다. 율법으로 보지 마십시오. 안식일을 적당하게 지내면 하나님도 귀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나님도 귀하게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은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생활이 흔들리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결국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오. 이것은 곧 말씀 중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입니다. 그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고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고자라도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가 기뻐하는 일을 골라서 하며 내 언약을 단단히 붙들기만 하면 내 성전과 내 성벽 안에 기념비를 세워 주고 아들과 딸에게 물려주는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을 주겠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이름을 주겠다.”(4-5절)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안식일은 날짜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가치로 살 것인가 믿음의 가치로 살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전부 돈의 가치로 삽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가 기뻐하는 일을 골라서 하며 내 언약을 단단히 붙들기만 하면 내 성전과 내 성벽 안에 기념비를 세워 주고 아들과 딸에게 물려주는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 예배도, 찬양도, 헌금도 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여러분, 예배하고, 헌금드리고,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줄 아십니까? 교회에 오지 못할 상황이 계속 생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심판입니다. 그렇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영적 태도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이름을 영원히 남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면서 다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도 이것입니다. 은혜 받고 구원 받고 회개했다면 하나님의 정의를 꼭 붙들고 안식일을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이라도 여호와께 속하고 나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고 내 종이 돼서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내 언약을 굳게 지키기만 하면 내가 그들을 내 거룩한 산으로 데려와서 내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겠다. 그들이 내 제단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다. 내 집은 모든 백성이 모여서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6-7절)비록 이방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안식일을 지키면 이런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축복 3-비전을 품음결론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진정한 회개와 변화는 한 가지 비전과 목표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시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이미 모은 사람들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또 모으겠다.” (8절)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미 모은 사람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이 사람들이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쫓겨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것이요, 나아가 모든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당신이 회개를 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이방인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만족하는 크리스천 은 없습니다. 내 부모, 형제, 이웃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고통스러워합니다. 만약 아무런 고통이 없다면 그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잠을 못자고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이것은 잊어버리거나 덮어둘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잠을 못자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마음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마음도 그렇습니다. 통일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통일이 급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야 합니다. 왜 우리가 러브소나타를 합니까? 우리 온누리교회만 행복하면 됐지, 왜 우리가 일본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할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고 정의롭게 살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쫓겨난 이스라엘이 돌아오고 더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진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선교사로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직장, 가정, 조국을 버리고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가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 사람 마음 속에 선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와 축복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회복되고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정의를 사모하게 됩니다. 둘째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방법입니다. 저는 주일날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즐겁게 하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기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셋째 모든 이방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품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북한, 중국, 일본을 보고 통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보며 애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과 시간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부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날을 귀중하게 여기십시오. 교회에 올 때 정성껏 오십시오. 몸 단장을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오십시오. 헌금도 준비해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받는 축복입니다. 이것은 율법 같지만 율법이 아닙니다. 회복과 구원에 바탕에는 진정한 회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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