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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 (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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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하시기 위한 세 가지 비유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첫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양 아흔아홉 마리를 집에 두고 찾아다니는 목자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5:4-7). 둘째, 한 드라크마 동전을 찾기 위해 온 집안 구석구석을 찾는 여인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눅 15:8-9). 그리고 셋째 비유가 오늘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기에 사랑한다 비유는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재산 중 자신의 몫을 미리 달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눅 15:11-13). 이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재산을 챙겨서 멀리 떠나가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묵상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 첫 번째는 아버지는 아들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펼쳐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아들은 나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도 아버지를 생각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 가면 굶어죽지 않을 것 같으니까 옵니다. 다시 말해 이 아들은 철저히 아버지를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 뿐 아니라 큰 아들도 그랬습니다.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자 큰 아들이 화를 냅니다(눅 15:28). 큰 아들 마음 가운데도 아버지를 이용해서 자기가 무엇을 해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몰골이 흉악해도, 도덕적으로 미흡해도 아들은 아들입니다. 수단으로 생각하면 이용하다 쓸모없으면 배신하게 되지만 목적으로 생각하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목적으로 보십니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과 딸이기에 좋아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을까요? 우리를 수단으로 사용해서 높아지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보고 싶으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아들이니까 딸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해서 하나님까지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예배, 기도도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독립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연합을 꿈꾸고, 인간은 도망치려 하지만 하나님은 함께 있으려 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미흡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이기에 좋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아버지의 마음을 여러분이 먼저 깨닫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본다 두 번째 아버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십니다. 모든 것을 탕진한 작은 아들은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다 돌아가자’라고 생각했습니다(눅 15:14-24). 아들은 과거를 생각합니다. ‘나를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써달라고 말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 준비된 말을 할 때 아버지는 아들의 과거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불쌍히 여기고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고 했습니다.(20절) 그 당시에는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고 죄를 지으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격리되고 벌을 받는데 때로는 돌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먼저 용서해주면 다른 사람이 그를 향해서 비판할 수 없고 돌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잘못을 한 아들이 돌아올 때 동네 사람이 돌을 들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목을 끌어안고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끌어안고 ‘나는 이사람을 위해서 피를 흘렸다’라고 하면 사탄이 우리를 정죄할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과거를 보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과거를 보고 품꾼으로 살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보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자기의 과거를 보면서 비판했지만 아버지는 미래를 보며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기회를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못했으니까 나를 싫어하고 나를 받아주지 않을꺼야’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보면서 아들의 행동을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보면서 ‘절대로 나같은 사람 받아주지 않을꺼야’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를 보고 받아주고 안아주십니다. 인간은 과거를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미래를 보십니다. 1%만 예수를 믿는 나라 일본의 과거를 보면 비판과 정죄만 하게 되지만, 미래를 보면 인구의 5%, 10%, 20%가 예수를 믿고 한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선교하고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손잡아 아랍권, 인도, 온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의 미래를 보고 응원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과거를 돌아보고 한없이 비판하고 정죄하고 슬픔에 잠겨있게 하는 악한 영은 떠나갈지어다. 아멘!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나는 너의 과거를 보지 않고 너의 미래를 본다’고 말합니다. 영적 성숙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자녀의 과거를 바라보며 잔소리로 하루를 보내는 엄마가 아니라 자녀의 미래를 보며 칭찬과 격려로 보내는 엄마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세 번째는 아버지는 비교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이 불평합니다. 큰 아들은 이전까지는 잘 살다가 작은 아들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눅 15:25-32). 비교하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비교했기에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과 비교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를 받아주기 않았기에 아벨을 죽였습니다. 비교의 술에 취하면 누구든지 슬퍼집니다. 자신의 과거가 슬퍼지고 자신의 신세가 슬퍼집니다. 그런데 이런 큰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너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었으며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느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아들아 너는 지금까지 너의 위치를 잘 지켰다. 너의 위치는 소중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도 소중했고 큰 아들도 소중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천 명을 전도한 선교사님과 한 명을 전도한 선교사님은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위치 자체가 소중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지 마십시오. 은혜입은 자로 만드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서 헤매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큰 아들처럼 하나님께 붙어있는데 어떤 분은 작은 아들처럼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재산의 문제, 관계의 문제로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망가진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문제들을 갖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을 모르는 여러분의 가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비교해서 어떤 사람은 받아주고 어떤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께 돌아올 때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기다리시고 품어주시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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