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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온 70인 (눅 1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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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70인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기간에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때 12제자와 70인의 제자를 각각 파송하셨는데, 오늘 본문에는 70인이 복음 전파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보고하는 내용과 예수님의 평가가 기록 되어있습니다. 기쁨을 주는 사역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사역은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70명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을 대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17절) 상처가 많은 사람, 죄의 지배에 있는 사람은 얼굴이 어둡고 생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경험한 사람, 생명을 살린 사람은 기쁨의 감격이 넘칩니다. 70인의 제자들은 복음을 통해 생명을 경험하였기에 기쁨이 충만하여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사역은 기쁜 것입니다. 떨림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입니다. 삶에 의욕과 생명력을 넘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둘째, 사역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움직이시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역을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능력도 자격도 없는 자신이 어느새 위대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역을 할 때 나 자신은 빠지고 주님이 높여져야 합니다. 물론 나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역은 주님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배우는 진리는 주님은 우리가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꺼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때론 새신자가 새신자를 전도하기도 합니다. 불신자가 불신자를 전도하는 일도 있습니다. 병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병자를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이, 병든 것이 제자됨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당신을 통로로 쓰고 계시는 가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이길 능력을 주심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세를 주었으니 그 어떤 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18-19절)셋째, 사역이란 마귀의 권세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우리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위대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세입니다.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권세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세’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원수의 모든 능력을 예외 없이 제어할 권세가 있습니다. 할렐루야!넷째, 사역도 중요하지만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20절)사역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존재가 더욱 중요합니다. 지난 주 큐티 본문에 달란트 비유가 있었습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들의 가장 큰 복은 많은 재산을 남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기쁨에 참예한 것입니다. 이들이 남긴 5달란트, 2달란트는 모두 주인께 다시 드려야 했습니다. 결국 사역의 결과는 내 것이 아닙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와 존재입니다. 주님은 “귀신이 복종하는 것보다 너희는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존재의 영성을 가르치십니다. 존재는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늘의 사람인 이상 여러분은 반드시 일어나고, 살아나고,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승리했습니다. 존재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 그때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넘쳐 말씀하셨습니다.(21절) 다섯째, 사역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 진리를 뒤집어 풀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사역이 아닙니다. 사역자들은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을 하면 안 됩니다. 사역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겸손하게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흐르면 주님과 같이 갑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주님보다 앞서 갑니다. 그래서 한참 가고 있다 뒤를 돌아보면 따라오셔야 하는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역에 내 주장, 내 고집, 내 원리가 앞서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시 달란트 비유를 생각하면, 주님은 1달란트 종에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꾸짖으며 화를 냅니다. 주님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사역이 아닙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은 사역을 잘못했습니다. 그는 사실 주인이 시키신 일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주인이 일을 맡긴 것 자체를 귀찮아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악했다고 변명합니다. 자신이 악하므로, 주인을 탓한 것입니다. 사실, 1달란트 받은 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종입니다. 안 맡길 수도 있었습니다. 맡긴 것은 은혜입니다. 게으르고 악한 종은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주인을 공격했습니다. 내가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불리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욕심은 하나님을 잘못보게 합니다. 우리 속의 죄악은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평가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역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뒤돌아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왕들이 지금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했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듣고자 했으나 듣지 못했다.”(23-24절)여섯째, 사역할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제자란 세상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본전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계산하는 사람도 제자가 아닙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우리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알고 가셨습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로마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니까 ’였습니다. 하나님은 계산이 빠르고 이성적인 모세를 홍해 속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홍해를 가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홍해로 백성들을 들여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그 길을 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로 나아가게 하라!”라고 명하십니다. 그 길은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입니다. 잘 모르지만 주님께서 인도하는 곳이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주님께서 거기 계시니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된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제자들의 행복은, 제자들의 가장 큰 축복은 주님과의 동행입니다. 이 위대한 영적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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