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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과 회복의 약속 (사 5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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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회복의 약속 십자가에서 선포되는 약속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염원은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언제 회복됩니까? 과거의 영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하는 것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통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너희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구원할 것이다.’ 이사야 54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3장을 잘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53장은 여호와의 종 메시아, 고난의 종 메시아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사야서 53장을 ‘예언의 지성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40장부터 66장까지 이사야 예언의 클라이맥스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나타난 메시아는 풍채가 수려하지도 외모가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고, 고통과 슬픔을 겪으며, 질병을 짊어지십니다. 학대를 받고 괴롭힘을 받았지만 입을 열어 변명하지 않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습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십니다. 여러분, 메시아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죽었기 때문에 이사야 54장의 회복이 예언되는 것입니다. 구원과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의 회복, 구원, 축복의 뒤편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이사야서 54장 1절입니다. “환호성을 질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환호성을 터뜨리며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홀로 쓸쓸히 지내는 여인의 자녀들이 결혼한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오늘 예언자는 ‘환호성을 질러라, 소리를 질러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이 그 수치를 벗어버리고 회복되어 결혼한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풍성한 구원의 축복 놀라운 사실은 이 여인이 버려졌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아내를 버리는 나쁜 남편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여인이 나쁘기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호세아서에 나오는 창녀와 같습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창녀는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고, 창녀를 버리지 못하는 남편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남편은 음란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하는 부인을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비록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기막힌 좌절을 겪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너는 남편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회복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아기를 낳아보지 못한 여인, 산고를 치러보지 못한 여인이 그 수치를 벗어버리고 회복되어 결혼한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은 자녀를 낳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 회복될 때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백성보다 더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돌아온 백성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백성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원상 복구의 의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내 잔이 넘칩니다’(5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내 잔이 간신히 찼습니다’가 아닙니다. 차고 넘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복의 의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구원을 받되 풍성한 구원을 받기 바랍니다. 축복을 받되 넘치는 축복을 받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먼 훗날 하나님의 교회가 생기고, 이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방인들이 돌아오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예수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한 사람들, 한 번도 하나님을 접촉해 보지 못한 미전도종족까지도 불러 모으시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사방으로 퍼지는 부흥 2, 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장막 터를 넓히고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활짝 펼쳐라.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터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네 자손이 뭇 나라를 차지하고 버려졌던 성읍들에 살게 될 것이다.”2절은 ‘장막 터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활짝 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때 가장 먼저 장막 터를 넓히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으로 여러분의 장막 터를 넓히십니다. 저는 여러분의 비즈니스의 장막 터가 넓혀지기를 축원합니다. 창고 문이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장막 터가 넓어지고 우리가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것은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병과 슬픔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나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회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치유될 것입니다. 수치를 벗을 것입니다. 넓혀진 장막 터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왜 장막 터를 넓히고 왜 말뚝을 단단히 박아야 할까요? 첫째, 좌우로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부흥도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면 여러분은 그냥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축복을 나눠주게 될 것입니다. 놀랍고 새로운 일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자손이 뭇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버려졌던 성읍들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시골의 폐쇄된 학교가 다시 문을 여는 것처럼 사람들이 살지 않던 성읍에 사람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수직적 수평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비즈니스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습니다. 계속 팽창합니다. 성경은 ‘100배 60배 30배’라는 말로 이 원리를 설명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계속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하나님의 축복과 회복이 계속 팽창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라지는 수치와 상처 이런 외면적인 팽창, 물질적인 팽창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치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릴 적에 겪은 비참한 상처들을 모두 치유해 주십니다. 4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기죽지 마라! 네가 창피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을 잊고 과부 시절의 창피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내면의 회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어릴 적 상처입니다. 성인이라 할지라도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학교에서 받은 상처,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등이 있습니다. 어릴 적 상처는 현재 나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과거의 상처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꽁꽁 묶어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다 치유해 주십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 숨어있는 어릴 적 상처들이 다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겪은 부끄러움이 다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과부시절의 상처입니다. 비록 내가 쫓겨날 만 해서 쫓겨났지만 상처가 있습니다. 억울함과 처절함이 있습니다. 과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일로 인해 받은 상처를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밖으로는 팽창하며 열방으로 가고, 안으로는 내면의 치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안에 외적인 팽창도 있지만 내적인 치유도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정신세계에 있는 거미줄, 어둠의 세력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다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백성을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하나님은 우리의 회복을 예비하시고 디자인하셨습니다. 5절 말씀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집중합니다. “너를 만드신 분이 네 남편이시다.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네 구원자시다. 그분은 ‘온 땅의 하나님’이라 불린다.”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첫째 ‘너를 만드신 분이 네 남편이다’입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표현합니다. 이 남편은 아주 좋은 남편이요 끝까지 기다리는 남편입니다. 둘째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시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하는 것이 없으신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거룩한 구원자시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비록 더 이상 뛰쳐나가는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냥 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넷째 ‘온 땅의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온 땅의 하나님이라 불리십니다. 6절입니다. “버림 받은 여인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너를 여호와께서 부르신다. 어린 시절에 버려진 여인과 같은 너를 여호와께서 부르신다.”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하나님의 주제곡은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내가 실수를 해서 심판을 받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부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어떤 상처를 받았더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7절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모으겠다.”여러분은 버린 사람이 힘들 것 같습니까 아니면 버림받은 사람이 힘들 것 같습니까? 버림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힘들고 괴로워하십니다. 부모와 자식과 사이가 나빠져서 자식이 가출한 가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자식도 괴롭겠지만 부모에게는 자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고통입니다. 이것이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제갈 길로 가고, 반항하며 죄를 짓고 몹쓸 짓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집을 뛰쳐나와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고통은 갑절이나 커서 깊은 눈물로 잠을 못 잡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용서하시고 다시 부르셔서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징계보다 큰 사랑 8절입니다. “노여움이 북받쳐서 내가 잠시 내 얼굴을 네게서 숨겼지만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네게 자비를 베풀겠다.” 네 구원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면서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자식을 때리고 야단치면서 기분 좋아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가슴을 찢고 울면서 때리는 것이 부모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혼내는 것에 섭섭해 하고 화를 내지만 부모는 피눈물을 흘리는 법입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영원한 사랑으로 네게 자비를 베풀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고통을 겪는 것을 못 견뎌 하십니다. 구약의 노아의 사건을 통해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가 가득하면 심판이 옵니다.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은 죄는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죄는 계속 남아 쌓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치 구름이 쌓여 비가 오는 것처럼 죄가 툭 떨어집니다. 신장이 이렇습니다. 80-90%가 망가질 때까지 아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죄가 쌓이기 전에 빨리 처리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나가면 그 죄가 다 사라집니다. 죄를 계속해서 쌓으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서울시의 죄의 무게는 폭발직전입니다. 인류의 죄의 무게는 폭발직전입니다. 전쟁, 지진, 기아, 기근 등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더 오래 가겠습니까? 결국 터질 것입니다. 여러분도 죄를 그만 쌓으십시오. 결국 그 죄는 툭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노아시대에 죄가 너무나 컸습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40일 동안 주야로 비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심판하시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이야기가 9절에 나옵니다. 시작되는 기적의 소나타 “노아 시대에 다시는 땅을 물로 덮어 버리지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 것처럼 이제 맹세한다. 나는 네게 화를 내지 않고 꾸짖지도 않겠다.”비록 내가 죄를 지어서 당한 심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보시며 더 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려도 내 사랑은 네게서 옮겨지지 않고 내 평화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를 가엾게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여러분이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과거를 보면 치가 떨린다. 나는 새롭게 살 거야’라고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메시지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고난의 메시아가 있기에 회복이 있습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내가 오늘 회복 받을 수 있는 것은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산이 옮겨질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옮겨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제 회복된 사람으로 여기에 섰습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과거처럼 살지 마십시오. 철없이 살지 마십시오.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기적을 꿈꾸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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