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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난의 예고 (눅 0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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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예고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에서는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뽑을 때도 기도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저런 대답을 했지만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답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 교회에 다니는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알려주시기 위해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보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나사렛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구세주라고 알아보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성령받은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수 있는 구세주로 믿고 살아나는 것이 성령의 역사중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라고 고백하는 것, 이 위대한 신앙고백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중의 능력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많은 은사들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신앙고백에 달려있습니다. 이순간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위대한 신앙고백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예고된 십자가의 길 예수님께서 이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십니다.(21절)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왜 지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첫째,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죽이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공부로, 이성이나 논리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날 때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더욱 그랬습니다.(22절)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가장 먼저 알아보아야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가르침을 듣고도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았지만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고백하면서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된 후 자신의 지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십자가의 길, 메시아의 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그러고는 그들 모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한국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신앙고백과 삶이 일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변화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못합니다. 한국교회에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과 삶이 다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을 따르는 위선자들이 많습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목사, 선교사, 장로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고백과 참된 제자도가 있으면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길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광의 길입니다. 사람들은 고난 없는 길, 쉽고 화려하고 편한 길이 복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십자가 없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24-25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은 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정말 사는 길은 죽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살면 죽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결국은 죽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가 돼서야 이것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한국에서,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속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길, 쉬운 길, 넓은 길은 당장은 편하고 복된 길 같지만 결국은 사망의 길입니다. 헛된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야 말로 사는 길임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포기해야 할 막대한 대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 출세도 포기하고, 편리한 길도 내려놔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이 사는 길입니다. 왜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실패할까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에게도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고, 영광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2월입니다. 여러분은 삶다운 삶을 살고 계십니까?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계십니까?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있는데 죽은 자처럼 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쳐서 육신의 소욕을 죽이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겉 사람이 죽어야 속 사람이 삽니다.(롬 8:13)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사십시오. 여러분, 나를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빌 2:5-11)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이야 말로 우리 삶을 삶답게 만듭니다.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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