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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의 터치 (눅 08: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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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터치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믿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단락은 40절부터 42절입니다. 이 부분은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예수님께 엎드려 자기의 딸을 고쳐달라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둘째 단락은 43절부터 48절입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즉시 병이 나았다는 내용입니다. 셋째 단락은 49절부터 56절입니다. 이 부분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살리신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믿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믿어야 하며, 이 상황의 연관성을 통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린 회당장 먼저 40절부터 4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반겼습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며 자기 집에 와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열두 살 된 자기 외동딸이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로 내려가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밀어 댔습니다.”예수님께서 갈릴리 서쪽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오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전도 사역의 중심지로 사용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들어서자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12살 난 외동딸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으니 예수님, 고쳐주십시오.”라고 간구합니다. 이 장면은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첫째,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한 사람이 회당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회당장은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인 회당에서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설교자와 기도자를 선정하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특히 회당장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함께 사사건건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회당장이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뭉클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습관적으로 살다가도 어느 순간 아이가 아프다든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잘나가던 회사가 잘 안될 때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자녀가 우울증에 시달릴 때, 회사의 재무관계가 엉켜서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때가 예수님께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께 엎드려서 간구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그저 운이 없다고 여기거나 상황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풀어주십니다. ‘이 사람만 아니라면…’, ‘이런 환경만 아니라면…’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하나님 앞으로 모든 문제를 갖고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은 축복의 통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것은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극장에 불을 다 꺼야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변 환경을 다 끄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당장의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 회당장이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어려움 가운데 계시는 성도에게 말씀드립니다.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저는 맞춤전도집회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집회는 다가오는데 신청자가 몇 명 없을 때 제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그러면 대충하던 기도도 더 간절해집니다. 포스터를 붙들고 기도하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부르짖기도 합니다. 어쨌든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 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믿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겸손하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줄 믿습니다. 닐 앤드슨은 ‘이제 자유입니다’라는 저서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늘에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 어둠에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이 주님 앞에 항상 고정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낙심하기 이전에 주님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혈루병 앓던 여인의 소망 둘째 단락은 43절부터 48절까지 입니다. “그중에는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 온 여인이 있었는데 의사들에게 재산을 모두 썼지만 어느 누구도 그 여인의 병을 고쳐 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의 뒤로 비집고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즉시 출혈이 멈췄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누가 내게 손을 댔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만지지 않았다고 하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밀어 대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손을 댔다. 내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알고 있다.” 그러자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떨면서 앞으로 나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인은 모든 사람 앞에서 왜 예수께 손을 댔는지, 그리고 어떻게 병이 즉시 나았는지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여기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혈루병은 하혈을 하는 병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다고 해서 제사도 드리지 못했고, 성전에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연히 사람들과의 접촉도 줄고 가족과의 관계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병을 고치기 위해 12년 동안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모든 재산을 탕진했지만 고칠 수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많이 힘들고 지쳤겠습니까? 이 여인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는 단 하나,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희망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실, 정말 이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말씀만 하시면 내 종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던 백부장의 믿음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에게 안수를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셔야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이 여인은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도 믿은 것입니다. 현실을 뛰어 넘는 믿음 회당장 야이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 여인은 공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열린예배가 끝난 후 한 어머니가 저를 찾아와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데리고 오시라고 했더니 그럴 형편이 못된다면서 저를 끌고 성가대석 뒷자리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2개월 정도된 아이가 있었는데 심한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냥 울고만 계셨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처럼 혈루병을 앓은 여인도 공개적인 자리로 나가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을 때 출혈이 멈춘 것입니다. 할렐루야!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은 믿음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믿음이 아니라 능동적인 믿음이요, 앉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일어서서 주님께로 뛰어나가는 믿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냥 거주하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 앞으로 전진하는 믿음, 나아가는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물에 빠지지 않고 걷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배 안에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 위를 걸으려면) 단순하게 믿으라’라는 책을 쓴 존 오트버그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배는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그러나 물은 위험하다. 배 밖에는 거센 파도가 일고 있다. 그러나 배 안에 있으면 물 위를 걸을 수 없다.”저는 베드로가 비록 물에 빠졌을지라도 믿음이 있는 아름다운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의지하고 있는 배는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곳에서 나와서 믿음의 행진을 하십시오. 손을 펴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터치’의 은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은어를 잡는 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은어를 잡으려면 배에 줄을 묶어서 해안으로 몰고 오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은어들은 줄을 보고는 겁에 질려서 해안까지 밀려나와 결국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합니다. 크리스천 중에는 이런 은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조금만 환경이 어려워지고 작은 병에만 걸려도 ‘나는 죽었다.’며 드러누우면 되겠습니까? 담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기적을 창출하는 믿음입니다. 안주하지 마십시오. 한번은 타이타닉호 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침몰된 타이타닉호에서 인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빙산 조각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에 손을 대 보십시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추위 속에서 죽었습니다.’ 방산 조각에 손을 대니 너무 손이 시렸습니다. 동시에 저는 당시 사람들의 체감 온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지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에 계셨던 예수님을 만져서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고, 그분이 상함으로 우리가 자유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짐으로 여러분의 모든 병과 우울증이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손을 내미십시오. 예수님을 만지십시오. 죽음을 이긴 생명 셋째, 49절부터 56절입니다.“예수께서 말씀을 채 마치시기도 전에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더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기만 하면 아이가 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에 대해 애도하며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알기에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그때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이 말씀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주님께서는 죽음까지도 이기셨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본질은 적당히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고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선포합니다. 이것을 믿고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감사의 찬양이 흘러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넘치는 영생의 축복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상어의 공격을 당하자 사람들이 공격을 피하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상어를 보고 도망가면 그 사람을 물고기로 착각하고 상어가 공격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어가 올 때 도망가지 않고 상어의 코를 만지면 상어는 물고기가 아닌 줄 알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귀가 여러분을 공격하러 올 때 도망가지 않고 대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귀가 공격할 때 도망가기 시작하면 마귀의 밥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고 말씀을 선포하면 마귀는 떠나갈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아이가 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믿기만 하면 아이가 나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지요. 아침에 일어나도 감사하고, 달빛만 봐도 감사합니다.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의 한 목사님이 암에 걸리셨습니다. 복수가 차고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데, 어린 딸이 울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빠, 죽지마. 아빠가 죽으면 우리 사택에서 쫓겨난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메어졌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 하나 죽는 것은 괜찮은데 가족이 집에서 나와야 한다니, 이 일을 어쩝니까. 저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질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말씀을 외우기 시작했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을 외울수록 작은 믿음의 씨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은 불신의 어둠이 사라졌답니다. 다음 날 아침 대변을 볼 때 모든 것이 다 쏟아져 나갔다고 합니다. 의사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다 나았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사망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이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의 사도가 되십시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며 간절히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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