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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정의 힘 (마 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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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예수를 좇는 무리들 마태복음 4장 2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사람들의 모든 질병과 아픈 곳을 고쳐 주셨습니다.”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가르치는 사역(teaching)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인생이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깨달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복음 전파(preaching)입니다. 예수님은 설교하셨습니다. 셋째 치유(healing)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모든 질병과 아픈 곳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고 주변에 있는 병든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24절, 25절입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병을 앓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온갖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간질병에 걸린 사람들, 중풍에 걸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갈릴리,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 강 건너편 지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습니다.”제가 이곳에서 설교를 하는데 환자들이 나으면 얼마나 놀랄까요? 사람들은 아마도 제 설교는 다 잊어버리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난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병이 낫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에 관심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병고침에만 있었습니다.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다 24절을 보니 온갖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간질병에 걸린 사람들, 중풍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청중들을 버려두고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인기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는 인기를 거절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을 원합니다. 건강을 원하고 인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의 평안입니다. 내면의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지만 인간이 찾는 행복은 허상입니다. 저 남자, 저 여자하고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만나보십시오. 별 것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으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가 없어서 불행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다면 굶어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머무르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쓰고, 매력이 없고,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 여러분의 영혼을 살릴 것입니다. 죽어가는 삶,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되돌릴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 하신 것이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2절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많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그의 제자들이 다가왔습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이 나가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보지 못하는 자가 눈을 뜨고, 귀가 열리고 천지가 열리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원했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것은 기적이 아니라 차분한 말씀이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의 조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보면 기적보다 더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척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해 여덟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둘째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셋째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나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성격을 고치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고 기적을 보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나쁜 성격입니다. 자기가 자기 성격을 못 이깁니다. 나쁜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나쁘기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한테 준 상처는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남한테 상처를 줄 때는 마치 아이큐가 0인 것 같이 행동합니다. 그런데 내가 상처를 받을 때는 아이큐가 160인 것 같이 행동합니다. 당신이 나한테 상처를 줄 때 목소리가 어땠는지, 눈동자는 어땠는지 전부 기억해 냅니다. 이것이 다 성격이 못됐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누가 상처를 주면 ‘노 땡큐’(No thank you)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상처만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아파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당신이 상처를 받는 것은 당신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고집은 하나님도 못 꺾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성격이 못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을 보면 왠지 ‘독하다’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네 가지 마음 가짐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격을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격이 너무 예민합니다. ‘머리는 왜 저래?’ ‘옷차림이 이상해.’라며 별 것을 다 상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성격 못된 것은 괜찮고 남 성격 못된 것은 못 견딥니다. 마치 귀신같이 괴팍스럽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죽기 살기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부도났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잘난 척 하다가도 부도가 나면 도망 다닙니다. 하늘도 캄캄합니다. 마음이 파산된 사람은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그냥 애통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래, 나 죄지었다. 어쩔래?’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만 죄짓느냐? 목사도 죄짓는다.’고 말합니다. 죄 짓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죄 때문에 혼자서 가슴을 쥐어짭니다.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친구 죄 때문에 애통합니다. 민족의 죄 때문에 내가 대신 애통합니다. 이 사람이 애통하는 사람이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죄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애통은 내가 실수하지 않았지만 대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셋째,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남자든 여자든 결혼할 때 성격을 보셔야합니다. 똑똑한지, 돈이 많은지, 얼굴이 잘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1년이 채 안되어 바닥이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야합니다. 어떤 고난도 어떤 시련도 어떤 오해도 이겨낼 수 있는 인격, 성격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온유한 사람을 ‘거인의 손안에 있는 어린 아이’에 비유했습니다. 거인의 손안에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이 거인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지만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제가 배운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이 ‘제가 가진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많이 가졌지만 없는 것처럼 살고, 많이 배웠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신경질을 잘 내고 얼마나 잘난 척합니까? 할 말 못할 말 다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온유한 사람이 되기실 축원합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나의 의가 아닙니다. 나는 의롭지 않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사막에서 물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위한 네 가지 마음 가짐 후반부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 네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자비로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긍휼,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랑보다 깊은 것이 긍휼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마음이 찡하고 찢어지고 아픈 것입니다. 긍휼한 마음은 그 사람이 지은 실수와 잘못까지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믿겠다.’고 하는데, 마음이 더러워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지가 뿌옇게 낀 창문으로 어떻게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언어가 정직합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이중인격자이며 이중 언어를 사용합니다. 셋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즉 피스메이커(peacemaker)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의 반대말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입니다. 피스메이커가 있는 곳에는 싸움이 사라집니다. 음담패설이 사라지고 마음이 부드러워 집니다. 저는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부드러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들으면 화가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넷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고난을 아는 사람입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은 삶의 깊이가 없습니다. 억울한 일도 당하고 누명도 써보고 고난도 겪어본 사람만이 성품에 깊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덧입으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앞서 소개한 여덟 가지 성품이 여러분의 성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여러 번 했는데 할 때마다 절망합니다. 제게 이 성품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성품대로 사신 분이 인류역사상 딱 한분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만이 이 여덟 가지 성품이 딱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좋아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보면 내게는 이런 성품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좌절하시겠습니까? 그냥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성품을 가지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됩니다. 나는 빛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빛을 줄 수 없지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받아들이면 빛이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성품이 여러분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변한 자신을 보며 놀랄 것입니다. “오, 내가 변했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화를 안내지? 내가 왜 욕을 안하지? 내가 참고 있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갑자기 변하지 말고 서서히 변해가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뛰고, 사람을 만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오만하고, 교만하고, 성깔을 부리고, 신경질을 내고, 시기 질투했던 모습이 정리되고 누구든지 나를 만나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과 악수한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결혼한 사람은 행복해 질 것입니다. 빛으로 소금으로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여덟 가지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 두 가지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소금과 빛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면 주변이 썩지 않습니다. 맛이 납니다. 소금은 적은 양이라고 할지라도 절묘하고 신비스런 맛을 냅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성격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어둠은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빛은 바늘구멍만한 틈만 있어도 그것을 뚫고 나갑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도 동쪽에서 밝아오는 햇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물러갈 준비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오시면 여러분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들은 떠나갈 준비를 합니다. 빛이 오면 여러분의 나쁜 성격, 못된 성격, 감당할 수 없는 성격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1년 내내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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