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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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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보통 요리하는 일보다 설거지를 더 싫어한다. 직장 일도 그렇다. 남이 해놓은 일을 뒷정리하는 것은 자신이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골치 아픈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싫어한다. 신입 사원 시절 내 경우가 그랬다.

공사 완공을 앞두고 5년 동안 쌓인 서류들이 사무실의 두 벽면 가득 진열되어 내 숨통을 졸랐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영문 서류들을 정리하는 것이 내 업무였는데 당시 나는 이 거창한 일뿐만 아니라 상사와의 관계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 사수(직속 상사)로 말하자면, 나보다 다섯 해 먼저 입사했고 업무엔 정통하고 컴퓨터엔 박사였으며 외국인과 회의까지 유창하게 할 정도였고 모든 일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팀의 여직원이 요즘 무슨 색깔의 옷을 자주 입는다는 것까지 입력하고 다니 정도로 천재(=괴물?)였다.

깔끔한 것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손을 씻으면 세면대에 대여섯 번씩이나 물을 받아놓고 손을 씻었다. 그런 내 사수는 상사들에게는 대단히 신임을 받았지만 나에겐 영 아니었다!

서류 뭉치 던지다

더구나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야’, ‘야, 김희정’, ‘너’ 중 하나였다. 그것쯤은 참을 수 있지만 열통 터지는 것은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어”라면서 업무에 대해 잘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괴로운 곳으로 보내셨을까? 마음에 답답함이 쌓여갔다.

6월 초 어느 날이었다. 유달리 덥고 답답했던 그 날 종일 서류철을 뒤적이며 진땀 흘리고 있었는데, 사실 땀만 흘렸지 하루종일 오래된 서류 뭉치 하나와 씨름했다. 그래서 더 열 받고 있던 늦은 오후에 그 대단하신 사수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비아냥대며 야단을 쳤다. “야, 김희정. 너 이 따위밖에 못해?”

당시 사무실에는 상사들이 여러 분 있었기에 모멸감은 더 컸고 급기야 이성을 잃은 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손에 들고있던 서류 뭉치와 펜을 번쩍 들어올린 후 사수를 향해 힘껏 내던지며, “그렇게 잘하는 Y대리님이나 해보세요.” 목청껏 외쳤다.

도대체 이 모습이 상상이나 되는가? 입사한지 6개월도 안된 신입사원이 여러 상사들 앞에서 이런 하극상을 저지르다니! ‘퍼덕’하며 서류 뭉치가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가 날 때쯤 정신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아, 하나님 오늘 또 큰 사고를 쳤습니다.” 몹시 후회하며 여직원 화장실로 달려갔다. 회사에서 마음이 괴로울 때면 언제든지 달려갔던 화장실에서 30 분쯤 울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음이 진정되자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갈 것인가?’ 하나님께 용기를 구하면서 30분 전에 뛰쳐나왔던 그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사무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니까 모두 나를 집중해서 쳐다보는데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차마 상사들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Y 대리에게로 향했는데 그도 순간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나는 나의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혹시 못 들었다고 다시 말해보라고 할까봐. 정중하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의 눈과 1-2초간 마주쳤는데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어색하고 창피스럽고 고약한 기분이 교차하는 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당당하고 담담하게, 꼭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인지 부끄러움도 몰랐다.

나는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사수의 반응을 기다렸는데, 잠시 후 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자기도 황당했었나 보다. 웬 웃기는 녀석이 서류를 집어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간 상황도 미처 정리가 안 됐는데, 잠시 후에 들어와서 꾸뻑 절하며 용서해달라고 하니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피식 웃었던 반응을 용서로 알고 자리로 돌아와서 퇴근 시간까지 죽은 듯이 앉아 바늘방석 같은 자리를 지켰다.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 생활을 잘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내 기분만을 생각했다면 나는 집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었다. 내가 사고를 쳤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을 생각하니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 순간에 내 실수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자의 나쁜 이미지를 주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하면 안 되겠다.’

그 날의 실수 이후 나는 언짢은 일이 생겼더라도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현재까지도 그 분과는 회사 내 어떤 직원 이상으로 친근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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