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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종 (사 52:1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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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오면 세상은 축제로 가득 찹니다. 사람들은 길거리에도 백화점에도 집에도 등불을 밝히고 성탄절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인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절망적입니다. 얼마 전에 한 방송국에서 제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한 날인데 요즘 성탄절의 주인공은 산타클로스 같다며 이에 대해 한 마디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현대인들은 성탄절을 황금연휴라고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성탄의 본질 성탄절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분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희생하기 위해, 고난을 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본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자기 비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자신을 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습니다. 비우지 않고 계속 채우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비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탄은 자기 포기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됨을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낮은 자와 함께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지위를 포기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 앞에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놀랍게도 성탄절과 일치합니다. 이사야의 클라이맥스가 여호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특별히 40장부터 66장까지는 이사야를 통해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십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교회가 북한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서로 싸우고 이념의 갈등이 생긴 이 땅에, 핵무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 땅에 교회가 희망이 되고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특징 오늘 말씀에 나타난 이사야의 메시지, 특별히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의 클라이맥스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네 번 등장합니다. 첫째는 42장 1-9절입니다. 둘째는 49장 1-7절이고, 셋째는 50장 4-11절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넷째 노래입니다. 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기 전에 이사야 42장 1-9절을 먼저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여호와의 종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메시아는 고난을 겪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의 종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진짜 하나님의 종들은 고난을 겪습니다. 따라서 고난을 겪을 때 의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갈등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메시아는 고난을 당함으로 온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었고 온 인류를 고난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고난을 겪음으로, 그가 수모를 당함으로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메시아는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세밀하게 예언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분의 출생지, 탄생의 배경, 어린 시절, 공생애, 십자가에 어떻게 죽는 것까지 예언되었습니다. 제비뽑기로 옷을 나누어 갖고, 채찍에 맞는 것 등에 대한 기록은 구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이 세상에는 일생 전체가 예언된 다음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뱃 속에 있는 아기의 성별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날 줄 미리 알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태어나고 보니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철저하게 예언된 대로 태어났습니다. 이유없이 고난받는 메시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종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3절입니다. “보라. 내 종이 잘 될 것이다. 그가 드높아지고 존귀하게 될 것이다.”여호와의 종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지만 결론은 형통하고 승리합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고난을 겪고 있지만 믿는 사람의 결론은 형통인 것을 믿으십시오. 빌립보서 2장 9-11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메시아는 형통합니다. 메시아는 승리합니다. 모든 무릎을 꿇게 합니다. 둘째, 메시아는 인기가 없습니다. 14-15절입니다. “전에는 그의 몰골이 사람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고 그의 풍채도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랐지만 이제는 왕들이 지금껏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것을 보고 아무에게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달아서 많은 나라들이 그를 보고 물을 끼얹듯 놀라고 왕들이 그 앞에서 입을 다물 것이다.”메시아가 이 세상에 와서 온 인류를 구원했는데, 몰골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풍채도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메시아가 그랬습니다. 끌려 다니는 짐승처럼 취급을 받고,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겪었습니다. 영화 ‘실미도’나 삼청교육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고난을 받고 철저히 짓이겨진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실미도나 삼청교육대에서 고난을 받은 것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비참하게 짓밟힌 것입니다. 52장 14절을 보면 “많은 나라들이 그를 보고 물을 끼얹듯 놀라고 왕들이 그 앞에서 입을 다물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그처럼 철저하게 무고하게 짓밟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였다는 사실 앞에서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충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백성들 셋째 모습은 53장 1절에 있습니다. “우리가 들은 이 소식을 누가 곧이 믿겠느냐? 여호와께서 그분의 팔을 누구에게 드러내셨느냐?” 메시아는 불신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에 대한 메시지를 예언자들이 소리 높여 외쳤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들을 수 있는 성령의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10-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계셨고 그분이 세상을 지으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메시아의 운명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도 불신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불신하고 거부한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불신하는 것도 비극인데, 하나님을 불신하지 마십시오. 불신이 곧 비극입니다. 사람도 그런데 하나님을 불신하면 얼마나 큰 비극이 생기겠습니까? 53장 2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새싹과 같이, 메마른 땅을 뚫고 나온 싹과 같이 자라났다. 그는 수려한 풍채도 없고 화려한 위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볼품이 없었다.”넷째, 메시아는 볼품이 없습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메마른 대지에 나온 새싹과 같은 것입니다. 이 새싹에 무슨 수려한 풍채나 화려한 위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새싹은 아무리 짓밟아도 또 나옵니다. 이 생명, 이 새싹과 같은 분이 메시아입니다. 온 인류가 거부하고 믿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며 저주해도 새싹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2장 6-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해산할 때가 돼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고는 아기를 천으로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메시아가 태어날 장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메시아가 죽겠습니까? 메시아는 태어날 곳은 없었지만 탄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믿지 않고 도망가고 저주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구원해 내고 말 것입니다. 그 민족을 반드시 구원해 내고야 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주 미국에서 김주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에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의사인데,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 자원해서 남미에 갔습니다. 그분은 아마존에 가서 근무시간 외에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큐티를 가르쳤습니다. 제가 그분을 7년간 지켜봤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 분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 월급을 털어서 생명의 삶을 스페인어로 번역해 소책자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들고 다니면서 큐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개인, 평신도가 그 일을 했습니다. 자기 근무 시간 외에는 그 일만 했습니다. 자원 기간인 3년이 끝나가자 KOICA를 찾아가 또 자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또 남미에서 사역을 계속 했습니다. 6년이 지났습니다. 세 번째 KOICA를 찾아가 또 자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을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한 사람이 한 민족을 바꾸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분이 현재 책을 1만 부를 찍습니다. 새해 1월부터는 2만 부를 찍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사람들이 못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일을 합니다. 제가 김주태 선교사님에게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라고 했는데 거절을 하셨습니다. 뿌려 놓은 씨를 수확해야 하는데 자기가 지금 떠나면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아서 그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 일을 하시라고 축복했습니다. 메시아는 광야에서 자라는 새싹과 같습니다. 풍채도 없고 위엄도 없습니다. 3절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을 뿐 아니라 고통을 겪었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를 당했으니 우리마저도 그를 무시해 버렸다.” 멸시와 조롱보다 큰 구원 다섯째, 메시아는 멸시와 무시와 조롱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제일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존재를 무시하거나, 돌아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습니다.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유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 위로가 됩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피했습니다. 철저하게 그분을 무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3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주님을 섬기다가 멸시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거나 병을 앓거나 사람들이 여러분을 피해가거나 무시할 때 ‘나에게도 메시아와 닮은 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상처 받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일을 겪는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입니다.일본에 계신 장재윤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번은 장재윤 목사님과 같이 일을 하는 젊은 목사님들이 사역이 너무 힘들어서 장목사님께 상담을 하러 왔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란 짓밟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짓밟히고 무시당하면 상대방이 감동을 합니다.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온 누리 덮는 성탄의 축복 마태복음 27장 28-30절을 읽겠습니다.“그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자주색 옷을 입혔습니다. 또 가시로 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는 그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의 왕, 만세!’ 그들은 예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렸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누군가 희생해야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가를 치러야 여러분 가정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한국이 살아나려면 어떤 사람이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메시아적 삶입니다. 예수님이 병들었기 때문에 내가 건강해 졌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자리에 억울한 일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오늘 다 푸시기를 바랍니다. 분한 것, 맺힌 것 다 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러셨는데 당연한 거지.’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 때 내 마음에 사랑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때 내 마음에 하늘의 보좌가 임재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가슴에 맺힌 것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것이 있습니까? 억울한 것이 있습니까? 무시당한 일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다 씻어 내십시오. 혹시 여러분이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모든 일을 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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