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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과 회복에 대한 환상 (사 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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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회복에 대한 환상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행복할 때가 많을까요, 불행할 때가 많을까요?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보다 불행한 시간이 많다고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행복을 원하지만 불행하게 보냅니다. 그래서 누구나 구원을 바랍니다. 영적인 구원도 필요하지만 육체적인 구원도 필요합니다.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심하고 전도하십시오. 누구든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임박한 심판과 회복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관한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도 보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열심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큽니다. 나는 포기해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았고 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지난 51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 ‘깨어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깨어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분노의 잔을 빼앗아 바벨론에게 주는 이야기가 52장에 나옵니다. 1절입니다.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힘으로 무장하여라. 시온아! 아름다운 옷을 걸쳐라.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아!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다시는 네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회복, 구원이 임박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누더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는 구원을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제 누더기를 다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으십시오. 여러분의 신분이 변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은 보좌와 상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쓰레기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영광스러운 자리, 왕의 자리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들어서 더러워진 여러분의 몸을 다 씻어주시고 냄새를 씻어주시고 화장도 시켜서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하나님의 환상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비된 보좌 1절에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다시는 네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은 “부정한 죄인이나 이방인에 의해서 시온이 더렵혀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도성이 더렵혀졌습니다. 아름답고 축복받은 나라라도 이방인들이 지배하면 더러워지고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음란, 마약, 도박, 성 등으로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쓰레기가 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고 단정하고 규모있고 지혜롭고 눈이 반짝거리고 의욕이 넘치고 희망이 있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민족도 그렇게 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바뀔 것 같은 환상을 봅니다. 지금은 너무 어렵다는 소리만 들리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제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새롭게 살자. 건강하게 살자. 축복받는 민족이 되자.’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2절입니다. “흙먼지를 흔들어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예루살렘아! 네 목에서 사슬을 풀어버려라. 포로 됐던 딸 시온아!”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아름다운 보좌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사고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떳떳함, 긍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눈만 봐도 ‘아, 이 사람은 구원 받았구나.’라는 것이 느껴져야 합니다. 도망자의 눈, 비굴한 눈, 패배자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으로 눈이 반짝여야 합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은 쇠사슬에서 풀려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노예에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보좌에 앉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죄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영광스런 보좌에 앉기를 축원합니다. 값없이 주시는 구원 3-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값없이 팔려갔으니 돈 없이 풀려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백성이 처음에는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 머물렀다. 그러고는 앗시리아가 까닭도 없이 그들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그렇게 하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 백성이 이유도 없이 끌려가고 그들을 지배하는 통치자들은 야유를 퍼붓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리고 매일 온종일 내 이름이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구원은 본질적으로 공짜입니다. 값이 너무 싸서 공짜가 아니라 값으로 매길 수가 없어서 공짜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공짜로 준다니까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무시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시시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뿐입니다. 누가 공기의 값을 매기겠습니까? 햇빛도,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즘에는 돈으로 사랑을 사고팔기도 한다지만, 그런 사랑은 얼마나 천박합니까? 참 사랑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구원도 너무나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세 번쯤은 시련을 겪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시련을 겪을 때 ‘나만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다 시련을 겪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자는 승리할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않는 자는 패배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40년 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은 한 번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고, 저를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도 그분의 사랑은 제게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그분의 구원은 매우 풍성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칩니다. 제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만 이렇게 사랑하실까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보십시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 중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내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밋밋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깜짝 놀랍니다. 6절입니다. “‘이제 내 백성이 내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그날에 그들은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계신 것은 마귀도 압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걷다가도 하나님을 느끼고, 잠을 자다가도 하나님의 기척을 느끼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몇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막연히 ‘하나님은 계시겠지.’하고 생각합니다. 2단계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으로 모셔 들이는 단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환영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모셔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단계는 하나님을 보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면 하나님이 내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오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친해지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고 자기 속에 있는 말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친해지기를 바랍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생각, 그분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냥 인사만 꾸벅 하는 것이 아니라 포옹을 하고 박수를 치며 ‘나는 하나님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파수꾼의 환호성 하나님께서 내 삶 속으로 들어오시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묵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그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 말씀을 읽으시고, 설교를 들으시고, 큐티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음성을 듣게 됩니다. 마음이 슬프면 위로해 주시고, 내게 용기가 없으면 용기를 주시고, 지혜가 없을 때 지혜를 주시고, 마음이 차가워졌을 때 따뜻하게 해주시고, 지치고 힘들 때 뛰어가고 춤을 추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교회 안에 계십니다. 기도 속에 계십니다. 예배 속에 계십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 모든 이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드디어 구원과 회복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7절입니다. “너무나 반갑다! 좋은 소식을 안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이르렀다고 통보하면서 좋은 소식을 들려주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하면서 시온을 향해 “네 하나님이 왕이 되셨다!”라고 하는구나.” 마치 전쟁에서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과 같은 모습입니다. 기쁜 소식을 들고 왕에게 달려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발이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알리는 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피 흘리는 발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의 엉덩이를 차는 발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8절입니다. “파수꾼이 목소리를 높이는구나. 그들이 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울리는구나. 모두가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파수꾼이 전령이 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울리고 기쁨의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 인생은 비명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한숨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땅이 꺼지듯 한숨으로 인생을 보내지 말고, 환호성으로 여러분의 한숨이 바뀌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집은 날마다 무당 굿소리와 부적을 붙이고 살았는데 이제 이것이 다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는구나.”하는 고백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죄악에서 떠나라 9-10절입니다.“모두 함께 환호성을 터뜨리라. 예루살렘의 버려진 곳들아!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해 내셨다.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가 보는 앞에서 그분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온 땅 구석구석에서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이 기쁜소식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었다면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추며 발을 구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멋지게 사십시오. 기쁘게 사십시오. 감사하며 사십시오. 환호성을 울리며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사십시오. 이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의 버려진 곳’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습니다. 양지는 괜찮습니다. 음지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패배한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보면서 시온의 회복을 보면서 우리도 이런 비전과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11-12절입니다. “떠나라. 떠나라. 거기서 나오라! 부정한 것은 건드리지도 말라! 그 가운데서 나오라! 여호와의 그릇을 받들어 나르는 사람들아, 너희는 깨끗이 하라. 그러나 너희는 서둘러 나오지 않아도 되고 쫓기듯 나오지 않아도 된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가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보살피시기 때문이다.”바벨론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에서 단호히 떠나라는 것입니다. 폭력조직에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음란한 곳에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마약에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도박에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나올 때 부정한 것, 즉 우상을 들고 나오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살면서 부정한 것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올 때는 다 버리고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부적을 다 찢어버리고 불태우고 나오십시오. 우상의 물건은 가져오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망하게 만드는 물질, 악한 것들은 다 버리십시오. 약속의 성취 ‘그릇을 받들어 나르는 사람들’은 성전의 기구와 그릇을 나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나올 때 빼앗겼던 성전의 기구와 그릇들을 들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움직이는 사람은 레위인이고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스스로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결을 원하십니다. 1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릇을 나르는 사람들은 나올 때 쫓기듯 나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당하게 나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도박에서 빠져나올 때 당당하게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약에서 빠져나올 때 당당하게 나오십시오. 에스라 1장 1절에서 4절까지 보면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나올 때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도움으로 당당하게 나온 것입니다. 고레스왕이 칙령을 내려 비굴하게 나오지 않고 떳떳하게 탈출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고레스왕의 칙령과 같이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상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말고, 쫓기듯 서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약속에 의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승리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구원과 회복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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