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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세례의 축복 (행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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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의 축복 일본 CGN TV개국을 위해 지난 10월 30일과 31일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개국 집회는 우리가 기획하고 준비한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일이 일어난 특별한 집회였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생각하고 준비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이번 일본 CGN 개국은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도 더 큰 은혜가 넘쳤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했다면 준비도 더 잘할 수 있고 쉽게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생소하고 일할 사람도 없는 일본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한일관계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일본을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도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일본에 부는 성령의 바람 저는 10년 전부터 끊임없이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도전하고 노력했습니다. 교회를 6개째 세우려 하고 있고, 사람도 보냈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좌절이었습니다. 될 만한데 안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벽이 높고 힘이 들었습니다. 일본에 교회는 많지만 교회 하나하나가 너무 약하기에 힘을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프로그램을 해도 1천명 넘는 집회가 없습니다. 많아야 5-6백 명입니다. 일본사람들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첫날 집회를 한 요도바시교회는 교회당도 예쁘고 아름다운데 사람이 가득 찬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CGN 개국행사는 2층까지 빈 곳이 없이 사람이 가득 찼습니다. 저는 ‘연락을 해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다 어디에서 왔나?’많이 놀랐습니다. 둘째 날 집회가 열린 오사카 NHK홀은 종교행사로는 빌려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서 설교를 듣고 찬양을 부를 수 있다니!’라며 흥분을 했습니다. 이 홀에는 1천4백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인데 이날 1천6백명 이상이 오셨고, 밖에도 4백명 이상이 대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저는 동경에서 설교하는 날 오전에 투석을 했습니다. 투석을 하고 나면 굉장히 지칩니다. 몇 시간 쉬어야 하는데 설교를 해야 되기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몸은 힘들고 입은 말라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이 왔고 설교는 해야겠는데 제가 힘들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하기 힘들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감동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통역을 하시는 장재윤 목사님도 설교하는 저와 하나가 된 듯 열정적으로 통역을 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은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는데 설교할 때마다 박수소리가 터지고 할렐루야가 나오고 아멘소리가 나오니까 오히려 일본인들이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일상적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령의 역사구나.’생각했습니다. 부흥의 징조 오사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증할 때마나 찬양할 때마다 설교할 때마나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있고 박수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일본 목사님들과 세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쳐있던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좋다. 일본도 가능성이 있다. 부흥이 시작되는 것 같다. 할 수 있다.”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란 내 마음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할 수 있다.’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정이 변하겠구나. 내 인생이 변하겠구나. 우리나라가 변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너무 힘들고 어렵고 깜깜합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듯이 제 마음 한 쪽은 어둡지만 한 쪽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겠구나.’라는 희망을 봅니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습니다. 동남아를 비롯해 주변국가가 움직이는 것과 미국의 선거를 보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성령의 소리,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소리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일본에 갔다 온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요즘 매일 일본이 생각납니다. 성령님께서 일본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성령체험 이후의 삶 예수를 믿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습관적, 형식적, 전통적으로 그냥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이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부터 부모님께서 예수님을 믿었기에 자동적으로 예수를 믿었고 유년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찬송가 부르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교회가고 기독교 행사를 하고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진짜 예수님을 만났니?’라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재수할 때였습니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울 때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하자 저를 찾아오셔서 저를 만져주셨습니다. 십자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 2천 년 전에 죽으신 예수님이 진짜 살아서 제 마음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달랐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을 다 만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수를 만난 순간, 예수를 경험한 순간, 예수를 체험한 순간 성령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죄가 씻어지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신이 희어지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제 삶은 그 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생각해보니 벌써 40년이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이런 감동과 감격과 흥분은 한 번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막연히 관념적으로 이성적으로 지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묻은 손을 만지고 예수님의 심장에 손을 집어넣고 예수님의 피 속에 여러분이 들어가고 예수님의 현장에 동행하는 영적 경험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성으로 경험으로 상식으로 자기 의지로 믿습니다. 그래서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교회에 다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도응답이라든지 기적이라든지 하나님의 초월적이 사건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과 예수 만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감동적이고 생기가 있고 의욕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아주 만사가 기쁨에 충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을 보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는데 아무 생동감도 없고 기대도 없고 그냥 평범합니다. 교회에도 계속 오고 찬송도 계속 부르지만 그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슬픈 것은 슬프고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 사도행전 19장에 해답이 있습니다. 1절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은 윗 지방을 거쳐서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바울은 에베소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도 잘 알고 예수도 잘 믿고 훈련도 잘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바울이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2절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여러분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사실도 듣지 못했습니다.’”바울의 직감은 정확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지만 변화도 없고, 감동도 없이 그냥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보통사람들처럼 실망할 때 실망하고 좌절할 때 좌절하고 힘들 때 힘들어 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을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친 사람은 아볼로입니다.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8장 24-25절에 아볼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볼로라는 유대 사람이 에베소로 왔습니다. 그는 학식이 많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 열정을 가지고 전도를 할 뿐 아니라 예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볼로의 한계 여기 아볼로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인 그는 에베소에 와서 살았습니다. 첫째 그는 학식이 많았습니다. 둘째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셋째 일찍 주의 도를 깨달아 열정을 가지고 전도했습니다. 넷째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세례는 몰랐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하고 체험적이고, 형식적이고, 논리적이고, 지적이고, 의지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기 체험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야 기적 안으로 들어가는데,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보니까 그 이상의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도 내안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10년 20년 30년 계속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아볼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다른 질문을 합니다. 3-4절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자기 뒤에 오실 분을 믿으라고 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입니다.’”에베소 성도들은 요한의 세례는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다. 나는 이분을 위해서 지금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불세례를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4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계시지만 성령님이 계신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미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신데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은행 계좌에 돈이 많이 있는데도 알지 못해 쓰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님이 오십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능력이 나타납니다. 시작되는 성령의 역사 이 사실을 들었을 때 에베소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5-6절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며 예언하게 됐습니다.”이미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바울이 깨우쳐 주는 순간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가둬 놓지는 않았습니까? 성령님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성령님에 대해 눈을 뜨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에게 말을 하십시오. 그분을 환영하십시오. 그분의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나를 진리로 인도할 것이며, 바람처럼 불처럼 기름처럼 나타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능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환경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내 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내 죄가 벗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두움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귀신들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5-6절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 있는 자물쇠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었다면 여러분 안에 이미 성령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미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인정하고 성령님께서 움직이실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여러분 안에 이미 있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움직이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여러분을 이끄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의 축복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새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능력이요, 불이요, 바람이요, 생수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씻어주실 것이며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달라질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나무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아무리 슬프고 힘들고 어려워도 성령님께 이 시간에 말씀하십시오. 그분이 때로는 아이디어를 주시고, 새로운 영감을 주시고, 신선한 감동과 상상할 수 없는 열정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집중해 기도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성령의 생각이 커집니다. 나는 작아지고 나는 없어집니다. 지금은 나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에는 성령님이 나를 지배할 것입니다. 나를 움직일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얹고 안수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다 갈 수 없기에 여러분의 손을 빌어 안수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에 바울이 안수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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