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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펴리라 (사 4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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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펴리라 바람처럼 불처럼 오시는 성령 저는 이번 ‘끝없는 도전’ 축제를 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Acts29 비전을 나누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무리 비전을 선포해도 잘 먹히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번 축제에 약 30개 교회에서 수백 명의 성도들이 참여한 것을 보니 감격스러웠습니다. 비전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전 세계에 2천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꿈인데 어느 날 2천 명의 선교사들이 그 교회 성도들과 함께 한자리에 모일 것을 생각하며 혼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바뀝니다. 가을바람이 불면 깊은 산속의 나뭇잎들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불과 같습니다. 끌 수 없는 불, 멈출 수 없는 불입니다. 은혜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고 불이 쏟아져서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120명의 사람들이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가끔 ‘120명의 사람들이 다 믿음이 좋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실수로 온 사람, 믿음은 없는데 어떻게 따라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다락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 성령의 불과 바람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사야 49장을 보면 성령의 바람이 불고 성령의 불이 임한다는 예언이 나타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현재는 고통이었습니다. 비참하고 불안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행복이라 말하지 않았고, 기쁨, 회복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과 회복을 주시고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비전을 주셨습니다. 구원과 회복의 약속 어떻게 이런 회복과 구원의 축제가 일어납니까? 여호와의 종, 메시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이사야 49장은 여호와의 종과 회복이라는 두 주제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회복은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버렸던 사람들, 포기했던 사람들, 잊혔던 사람들, 멀리 있었던 사람들이 시온을 향하여 돌아오는 것이 회복입니다. 이방인들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열왕들도 돌아오고 이방의 지도자들, 관원들도 하나님 품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떠났던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안에 회복이 일어나면 자녀가 돌아오고 남편이 돌아오고 아내가 돌아오고 가정이 돌아옵니다. 저는 잃어버렸던 우리 북한도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땅의 모든 미전도종족도 회복의 그때에 다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을 보면 “어머니는 잊어 버려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16절에서는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자녀들이 속히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세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첫째 신부입니다. 단장한 신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다고 것입니다. 둘째 비좁을만큼 많이 온다입니다. 처음에는 땅, 집이 넓어서 어떻게 다 채우나 하지만 어느 날 보니 자리가 없어서 다 서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셋째 더 넓은 장소를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것이 49장에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제가 서빙고에 온누리교회를 짓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인들은 몇 백 명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운동장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층은 막고 아래층에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자리가 비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부부터 7부까지 예배를 드리는데도 양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서빙고는 온누리교회가 아니라 ‘온난리교회’입니다.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더 넓은 공간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교회도, 여러분의 가정도, 기업도 부흥할 것입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게 될 것입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잃었던 자가 돌아오고 병들었던 자가 치유되고 포기했던 자가 돌아오는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열방에서 돌아오는 백성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환상을 약속하십니다. 이렇게 많이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세 가지 충격적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나는 해산할 능력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왔는가? 둘째 나는 포로로 끌려가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은 누가 양육했다는 말인가? 셋째 나만 홀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이런 회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속에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을 주신 것처럼 저는 우리 민족에게, 여러분에게 이런 회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회복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22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다. “보아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해 손을 펼치고 뭇 백성에게 내 깃발을 들어 신호를 할 것이니 그들이 네 아들들을 양팔에 안고 오며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데려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뭇 나라를 향해 열방을 향해 손을 드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면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막혔던 것이 뚫리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뭇 나라를 향하여 손을 펴시고 뭇 백성에게 내 깃발을 들어 신호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시온에 하나님의 깃발이 꽂힐 때 마귀, 바벨론, 악한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들들을 양팔에, 딸들을 어깨에 메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사람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이 사람은 자기가 찾은 양을 끌고 오지 않고 기뻐서 어깨에 메고 옵니다. 손을 펴시는 하나님 여러분, 하나님도 여러분을 안고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메고 올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시온의 승리는 곧 모든 이방인들의 개종을 의미합니다. 모두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방언들이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식민지 시관’이라며 선교를 일종의 침략으로 잘못된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대국이 연약한 나라들을 침략하기 위해 선교를 이용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선교는 침략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선교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약소국가를 강탈하는 강대국의 횡포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면, 하나님께서 깃발을 꽂으면 떠났던 백성들, 잃어버린 백성들, 포기했던 백성들이 다 돌아옵니다. 두 손 들고 경배하면서 스스로 돌아옵니다. 당시 이사야가 보았던 이 환상은 먼 훗날 신약시대 교회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9-10절에도 이런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았습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들을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말했습니다.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속한 것입니다.’”주님께서 다시 재림하는 그날에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이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찬양을 부르면서 몰려올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환상입니까. 이것이 역사의 완성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런 환상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 이사야 49장 23절입니다. “왕들이 네 양아버지가 되고 왕비들이 네 유모가 될 것이다. 그들이 코를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에 묻은 흙을 핥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을 알게 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게 될 것이다.”열방의 모든 왕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양아버지가 되고 왕비는 유모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격려해줍니다. 그들이 코를 땅에 대고 엎드려 우리를 경배하고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사람들은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면서 솟구치듯 올라갈 것이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고 바라고 기다리는 자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시며 개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당시 시온 백성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고 교회도 많은데 왜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일까요? 교회와 크리스천이 이토록 무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문제가 너무 어렵고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도박, 마약, 술, 성 등에 중독되었습니다. 폭력, 부패, 사기, 거짓이 가득합니다. 점점 도덕적으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심각한 안보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표류하는 배 같습니다. 누구 말을 믿어야 될지 모릅니다. 너무나 많은 소리들이 복잡하게 들려옵니다. 국민들이 헷갈립니다. 무엇이 옳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 일본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번 핵실험 했는데 두 번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누가 이것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정죄하고 좌절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희망을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유일한 대안은 교회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교회가 깨어나야 합니다. 교회밖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뭉쳐야합니다. 금식해야하고 회개해야하고 각성해야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합니다. 시온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울며불며 통곡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살 것입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면 수치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미국도 아니요 중국도 아니요 일본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간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질러야합니다. 이것밖에 해답이 없습니다. 이사야 49장 24절입니다. “힘 센 사람에게서 전리품을 빼앗을 수 있느냐? 포악한 사람에게서 포로를 빼낼 수 있느냐?”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가 김정일의 손에 있는 핵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까? 온갖 거짓말과 위조지폐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을 만들었는데 그 핵을 빼앗기겠습니까? 힘센 사람에게서 전리품을 누가 빼앗을 수 있으며 포악한 사람의 손에서 포로를 누가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불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면 손 뒤집듯 쉽습니다. 이것이 2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포로를 힘센 사람에게서 건져내고 전리품을 포악한 사람에게서 빼내 오겠다. 내가 너와 다투던 사람과 싸우고 직접 네 자녀들을 건져 내겠다.” 하나님의 해결 방법 할렐루야! 오늘 이 약속이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울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슬픔도 있고 좌절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결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론은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회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센 사람이나 포악한 사람을 잠재울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입니다. “오 내 영혼아,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느냐? 왜 이렇게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도와주시는 얼굴을 보아라. 내가 오히려 그분을 찬양하리라.” 오늘 우리들을 보면 다 풀이 죽어있고 불안해합니다. 뭔지 모르지만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죽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 없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암에 걸렸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돌아옵니다. 남편도 돌아오고 아내도 돌아올 것입니다. 기죽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 26절입니다. “내가 너를 압제하던 사람들로 자기 살을 먹게 하고 자기 피를 달콤한 포도주처럼 마시고 취하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나 여호와가 네 구원자, 네 속량자, 야곱의 강한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신다’는 것은 내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은 밖에서 아무리 때려도 망하지 않습니다. 내분이 일어나야 망합니다. 이것이 성경적 원리입니다. 스스로 분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벨론이 그렇게 망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 그러면서 마지막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구속자이십니다. 둘째 속량자이십니다. 셋째 강한 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요 우리를 속량하신 분이요 우리를 구원하신 강한 분이십니다. 시편 18편 1-3절입니다. “내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여호와는 내 바위시요, 내 산성이시요, 나를 건져 내는 분이시며 내 힘이신 내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십니다. 내 방패, 내 구원의 뿔, 내 산성이십니다. 찬양 받아 마땅하신 여호와를 내가 부르니 내가 내 적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속량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강한 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떤 고통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부활과 회복의 환상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은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한 여러분의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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