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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이여 땅이여 춤을 추라 (사 4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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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여 땅이여 춤을 추라 이사야서를 통한 약속 사도 바울의 영적 체험을 세 가지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마다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깊이 경험한 것 같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자주 썼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 ‘하나 되었다’는 뜻입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이 말은 곧 사도 바울의 삶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 참 부럽습니다. 온전히 예수님에게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런 신앙 고백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구약 이사야서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종’에서 연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몇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책망과 징계와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들어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열방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둘째, 구원과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과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의 결론은 항상 구원과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구원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 이후에 독특한 단어가 불쑥 나옵니다. 바로 ‘여호와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나라까지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이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열방과 우주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십니다. 여호와의 종의 모습 그러면 이사야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은 어떤 존재일까요? 이사야서는 9장에 걸쳐서 여호와의 종을 소개하는데 한꺼번에 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그림자를 벗겨내는 식으로 소개합니다. 마지막 장에 가면 카메라의 초점이 맞듯이 여호와의 종이라는 개념이 명확해 집니다. 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여호와의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민족에게 여호와의 종이라는 생각이 스며드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살든지 죽든지 나는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한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영혼에 이런 생각이 깊이 파고들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종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 내용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메시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메시아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름으로 되는 것이 메시아입니다. 둘째, 메시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셋째,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존재입니다. 넷째, 그는 수고하고 고생을 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분이야 말로 가장 존귀한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다섯째, 메시아가 가는 곳마다 죽은 자가 살아나도 흩어진 자들이 모입니다. 마귀는 분열시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마음을 모으고 화해시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어디 있든지 간에 화해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싸매고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열방의 빛이 되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민족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그분의 생각은 언제나 우주적이고 이방인을 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진정한 크리스천은 민족을 뛰어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품고 있지만 민족에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세계를 품는 세계관, 나와 다른 사람, 사상까지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서양종교를 믿느냐고 합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 미국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모든 인류의 종교입니다. 한 지역의 종교가 아닙니다. 일곱째, 메시아는 열방에게 경배와 찬양을 받는 존재입니다. 언약을 성취하는 종 이것이 지난주에 우리가 들었던 말씀입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종이 어떤 일과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를 베풀 때 내가 네게 대답했고 구원하는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지키고 너를 백성들의 언약으로 삼겠다. 그 땅을 일으켜서 폐허가 된 기업들을 다시 나누고”첫째, 여호와의 종이 하는 일은 언약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도 구약, 신약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은 언약, 계약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 계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이것은 독특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백성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완성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 때에 응답하셨고, 구원하는 날에 도왔다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이 지금 이 시간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오늘 하신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축복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병 고치는 이야기가 있으면 오늘 여러분의 병이 고침을 받는다는 것이요, 기업이 살아나는 이야기가 있으면 오늘 여러분의 기업이 살아난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보면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본문을 따라가는 강해설교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는 성경 본문이 하는 말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하기 싫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늘 주신 말씀이 온누리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열심히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들을 때 성도들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 8절에는 중요한 문장 4개가 나옵니다. 첫째, ‘내가 네게 대답(응답)했다’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응답받는 날입니다. 둘째, ‘내가 너를 도왔다’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는 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시는 날입니다. 셋째, ‘내가 너를 지키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넷째, ‘너를 백성들의 언약으로 삼겠다’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때마다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제가 이사야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설교를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주 이 축복의 말씀을 설교하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믿음이 생기고, 비전이 생깁니다. 제가 목회해서 알게 된 것은 10번은 말해야 성도들이 비로소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말해서는 잘 모릅니다. 여러분, 성경에 ‘너는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라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괜히 이런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꾸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초초해하니까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우리를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는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돕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가지 결과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종을 통해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일을 하시면 결과는 어떨까요? 8절 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첫째, 폐허가 된 기업이 다시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땅과 기업과 성전과 가정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 절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포기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폐허된 기업을 일으키고 다시 나눠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망한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 민족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상해 있습니까. 교육, 국방, 경제 등 우리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9-10절입니다. “갇힌 사람들에게는 ‘나오라!’하고 말하겠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풀려났다!’하고 말하겠다. 그들은 길 위에서도 먹겠고 헐벗은 언덕이 모두 그들의 목장이 될 것이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뜨거운 바람이나 햇볕도 그들을 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분이 그들을 이끌어 물가에서 쉬게 하시기 때문이다.”둘째, 갇힌 사람들이 풀려납니다. 갇혀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석방이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요. 하나님께서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풀려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길 위에서도 먹겠다는 말은 더 이상 굶주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헐벗은 언덕이 목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축복이 북한 땅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환상이 아프간과 이라크와 굶주린 아프리카에도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읽은 모든 이들이 환상을 보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회복된 세계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본 환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말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요, 회복에 대한 믿음입니다. 내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부활하는 믿음, 회복되는 믿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통을 받고 야단을 맞고 배고프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먹을 것이 가득차고 산마다 목장이 생기는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신다, 나를 지켜주신다, 하나님께도 도와주신다고 믿으십시오. 일반적으로 젊을 때는 꿈만 있고, 중년이 되면 현실만 있고, 노년이 되면 과거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꿈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약속, 희망, 환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존귀한 자입니다. 셋째, 물가에서 쉬게 하십니다. 10절 후반절을 보면 시편 23편이 생각납니다. 이것을 꿈꾸십시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잔잔한 시냇가에서 쉬게 될 것입니다. 읽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모든 산에 길을 만드심 여호와의 종이 하는 역할 두 번째 이야기가 11절에 있습니다. “내가 내 모든 산에 길을 만들고 내 큰 길들을 돋우겠다.”둘째, 모든 산에 길이 생깁니다. 산에 길이 생길 뿐만 아니라 산과 산을 잇는 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험악한 산이라도 길을 내어 주시고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이 있어도 길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길을 만들 뿐만 아니라 다니기 쉽게 돋우겠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이렇게 길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길로 사람이 다니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사람들이 이 길로 온다는 것입니다. 원근각처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모으시는 것입니다. 길이 생기면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그동안 자기만 알던 사람들이 벽을 허물고 서로 유무상통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보라, 사람들이 멀리서 나올 것이다. 어떤 이는 북쪽에서 오고, 어떤 이는 서쪽에서 오고, 어떤 이는 시님 땅에서도 나올 것이다.”여러분, 소리가 들리십니까? 그동안 가로막혀서 다닐 수 없었던 곳에 길이 뚫려서 절망하고 의심하고 좌절했던 사람들이 이제 희망을 갖고 동서남북에서 나오며 지르는 환호성이 들리십니까? 이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돌아오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셨다’라면서 산으로 난 길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의 길입니다. 이것이 민족화합의 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상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길거리마다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땅이 풍성한 목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풍성한데 서로 헐뜯고 의심하고 힐난합니다. 인터넷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비방하는 글이 넘칩니다. 마치 지옥 같습니다. 인간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흉하고 더러운 지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바뀌는 구원의 날 저는 이런 흉한 모습이 아니라 여유 있고, 남을 배려하고, 대접하고, 인내하는 아름다운 민족으로 거듭나는 환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직하고 술, 마약, 도박,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환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경제, 언론, 통일에 대한 환상을 보십시오. 이런 환상은 정치인들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인들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비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누가 우리나라를 망가뜨리려고 해도 우리가 스스로 이 비전과 환상을 가지고 아름답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입니다.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는 날은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뒤바뀌는 날입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날입니다. 막판 뒤집기가 있는 날입니다.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생이 뒤바뀌는 날입니다. 이것이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너무 슬픈 것은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감동도 흥분도 열정도 없는 것입니다. 밤을 한번 새보는 일도 없습니다. 예전 삶과 다른 것은 단지 예수 믿었다는 말만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정말 알게 되면 그렇게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인생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약간 미친 사람같이 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어떻게 예수 믿고 정상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서 여러분의 인생에 아무 변화가 없다면 여러분이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취미요, 교양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13절입니다. “하늘아, 기뻐 소리치라. 땅아, 즐거워하라! 산들아, 노래 부르라!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하늘아 기뻐 소리치라! 땅아 즐거워하라! 산들아 노래 부르라! 이 정도 되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너무 늙지 않았습니까? 열정도 없고 현실이 커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늙은이들이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제껏 살았던 것이 아니라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흥분과 감동과 비전과 꿈이 여러분의 인생을 사로잡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삶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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