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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용서의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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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외래를 들렀을 때 한 직원이 이렇게 인사를 건네 왔다.

'목사님 중국이란 벽은 역시 두텁고 높은 모양이죠?'

내가 대꾸했다.

'아! 역시 영적인 사람의 센스는 다르구나. 그래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다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중국의 단기 의료 사역이 포기된 것에 대한 서로의 인사였다. 이런 인사를 주고받은 후 교목실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교단 신문인 [기독신보]를 들쳐보게 되었다. 그리고 참으로 아연실색할 보도를 접하였다.

'공산권 선교는 신중해야' 라는 제하의 기자 수첩난은 심하게 사역의 중단을 힐난하고 있었다. 분명 전시효과적이니 한건주의니 하는 것들은 언어폭력이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내용이 어처구니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혹 우리가 못한 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기억한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의 선교도 실패작이었다 말해야 옳다. 우리가 이번에 중국에 가는 것을 연기한 것은 순전히 학내 사정에 비롯된다.

만약 이번이 어렵다면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실제 우리는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박해야 옳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나 역시 반박할 말이 왜 없겠는가. 더욱이 역사의식이 남 못지않고 기록의 중요성을 아는 내가 왜곡된 기록을 그냥 두고 싶겠는가? 그러나 난 그렇게 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반박논리를 궁리하면서 퇴근길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게 한 설교자의 설교내용이 가슴을 때린 것이다.

'정당하고 옳은 일 보다 위대한 일을 하지 않겠는가?'

힘들긴 했지만 정당한 일을 위해서보다 위대한 일을 위해 모든 걸 용서하기로 한다. '용서의 연습' 그러고 보니 오히려 감사가 넘친다. 그런 비난들이 관심의 표명임을 안다. 실제 칭찬에만 익숙해지기 쉬운 나에게 얼마나 좋은 비난에 대한 인내의 학습이 되는가 말이다.

진정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회를 통해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람베드의 휘서(Lord Fisher of Lambeth)경의 말을 되새겨 또 하나의 교훈을 나누고 싶다.

그는 공적 발언을 할 때 그리스도인이 준수해야 할 네 가지 규칙을 정해 놓았다.

첫째, 우리의 유일한 임무는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 및 그들의 다양한 견해들을 화해시키는 것임을 잊지 말라. 우리는 반대되는 일들에 관해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나 절대로 공정한 마음의 소유자를 대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결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경멸조나 모욕적인 말을 사용하지 말 라.

셋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명백한 판단이 섰을 때는 그것을 권위 있게 공포해야 한 다.

넷째, 모든 사실이 확연히 다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항시 기억하고 모든 문제에 는 최소한 양면이 있음을 기억하라.

끝으로 에드먼드 버크경의 말을 한마디 더 인용함으로 글 때문에 마음에 상심을 경험했을 이들과 더불어 위로를 삼고자 한다.

'위대한 공적 계획을 수행해 나간 사람은 일이 지연되어 심한 탈진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실망을 당해 기분이 매우 상하기도 하며 충격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가장 심하게는 그 계획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그 안에 대한 건방진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모든 적대 요소와 싸워 승리한 산 증거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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