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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꾼되기 공부 (마 09: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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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엔젤레스 교외의 리버사이드시에는 시청 가까운 곳에 마틴 루터 킹목사의 동상이 있고 그 동상과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도산 안창호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 시장의 협력을 받아 미국 교포들이 55만불의 성금을 모아 세운 동상입니다. 도산선생의 동상이 그곳에 세워진 것은 도산선생께서 1902년 24세 되던 때에 그곳에서 한인 노동자들과 더불어 오렌지 밭에서 노동일을 하며 지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곳에는 700여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도산선생이 지도자로 오기 전에는 술마시고 노름하고 서로 싸움하느라 그 지역에서 신용이 떨어지고 일감도 제대로 얻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 때에 젊은 지도자 도산 선생이 와서 오렌지를 정성스럽게 따는 것이 겨레사랑의 길이라고 가르치며 몸소 본을 보이며 한인사회를 개조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 한인 노동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땀의 대가로 받은 수입 중에서 독립운동에의 자금을 걷어 상해임시정부를 수립 운영하는 일을 뒷받침하기도 하였습니다. 도산선생이 남긴 말로 다음의 말이 있습니다."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 하는가"옳은 말입니다. 교회의 일꾼 되는 것도 겨레의 인물되는 것도 일꾼이 되고 인물이 될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한국 나라에는 바른 일꾼, 바른 지도자가 없다고 모두들 염려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염려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건전한 인격을 갖추고 진정한 단결을 이루어 교회와 겨레의 일꾼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공부를 하여야겠습니다.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목자인 지도자가 없어 고생하고 있는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을 바른길로 이끌 일꾼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일꾼 보내 주시기를 기도하라는 말씀 속에는 그런 일꾼을 기르라는 말씀이 들어 있겠고 또 자신이 그런 일꾼이 되기를 공부하라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두레가족은 교회와 겨레의 일꾼을 기르는 일에 투자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런 일꾼 되는 공부에 전심전력하기를 다짐해야겠습니다 (출3:16-18, 딤전4:12-16 출처:이성희이스라엘의 장로회모세의 두 번째 거절을 들으신 하나님은 확신을 주시려고 모세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가서 그들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는 백성의 대표입니다. 가장에서 발달한 족속의 장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후에 가나안 정착 후에는 지방적 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고을의 장로로서 시민을 대표하고, 행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70인 장로가 있었습니다. 민수기 11:25에는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십니다. 70인의 장로들이 무엇을 하였는지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 후 70인은 산헤드린 즉 공회원이 되어 이스라엘 최고의 법정이 되었으며 동시에 최고의 행정기관이었습니다. 신약의 장로회는 교회를 치리하는 중요한 기관이 되었습니다. 디모데전서에는 디모데를 안수한 기관이 장로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14에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란 말이 나타납니다. 장로의 회가 교회의 일꾼들을 안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회는 모세와 함께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교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모세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아론과 함께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 둘이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한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에게는 위대한 협력자가 있었습니다. 이 협력자들이 없이는 결코 훌륭한 지도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에스라에게는 느헤미야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마가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누가가 있었습니다. 리처드 코치는 '80/20법칙'이란 책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는 협력자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협력자 없이는 거의 아무 것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맡겨두는 사람조차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협력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협력자는 많은 반면 이들을 적절하게 이용하지도 못합니다. 80/20 사고방식을 지난 사람들은 신중하게 소수의 협력자를 선택하고,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굳은 협조관계를 맺어놓습니다. 협력자를 얻는 것이 지도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간장과 쓸개를 보십시오. 이 둘은 상생상극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장기는 불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간장은 담즙을 만들어 담도를 통해 담낭에 저장합니다. 간과 쓸개는 가까이에 있으면서 서로 필요로 하고, 서로 반대의 기능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완전한 것이 없이 함께 해야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상호 작용하고 상호 필요성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몸인 것입니다. 3노인제는 우리 나라 의회정치 원형입니다. 3노인제는 마을 단위의 덕망 높은 노인 세 사람을 추대하여 마을의 대사를 의논케 하는 것입니다. 마을에 과실이 생기면 3노인제에서 벌을 정하게 하였습니다. 곧 입법 사법의 대권이 주어진 동회의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장로회에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본 것입니다."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보신 것을 장로회에 증언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기 이전의 일을 본 사람도 없고, 우리가 죽고 난 이후의 일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고 훤히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에 대하여 말만 들었지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말만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 다를 보고 계십니다. 사면에 눈을 가지고 있다는 야누스의 눈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눈을 두 개, 귀를 두 개, 입을 한 개 만들어 주신 것은 두 번 보고, 두 번 듣고, 한번 말하라고 하신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번도 안보고, 한번 겨우 듣고, 수백 번 얘기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어리석음과 어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책망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십니다. 나아가서 마음까지 통찰하십니다. 로마서 8:27에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4에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마음까지 헤아리시는 눈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에 있습니다. 잠언 15:3에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시편 34:15에는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온통 하나님의 눈입니다. 해가 하나님의 눈입니다. 달과 별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헨리 그룬왈드는 "우리는 정보의 80퍼센트를 눈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지금도 대부분이 활자화된 언어에서 나온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정보는 눈을 통하여 오지만 하나님은 온통 눈입니다. 동전을 손가락으로 잡은 채 시야를 가리도록 팔을 쭉 뻗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동전으로 1천 5백만 개의 별을 가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리면 안 보이고, 감으면 안보이고, 자면 안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살피시는 눈입니다. 감지도 않으시는 눈입니다. 졸지도 않으시는 눈이십니다. 왜냐하면 피곤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한 것입니다. "내가 말하였거니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하여 하신 하나님 말씀의 성취를 확인하십니다. 창세기 15:13에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 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세기 15:16에 또 말씀하십니다.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600년이 넘은 일이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창세기 50:24에는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 와서 시기가 도래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하나님은 수 백년이 지났지만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이루십니다. 에스겔 17:24에는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고 하십니다. 에스겔 37:14에도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절대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복을 주신다고 하면 복을 주십니다. 벌을 주신다고 하면 벌을 주십니다. 한없이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동시에 한없이 무섭고 용서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셋째, 들을 것입니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듣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마"입니다. 이 단어는 신명기 6장의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하신 "쉐마"와 같은 의미입니다. 순종하다, 경청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모세의 말은 경청하고 순종할 것입니다. 모세가 받은 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명을 전하는 일이고 둘째는 바로에게 백성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사흘 길쯤 가서 희생을 드리려 하는 일입니다. 모세의 받은 두 가지 명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장로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들을 것입니다. 듣는 것은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듣는 것은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십니다. 들으면 복이 됩니다. 순종하고 경청하는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에도 "들으라"는 명령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계시록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맥스 루캐이도는 "눈과는 달리 귀에는 꺼풀이 없다. 늘 열려 있게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늘 열려 있지만 듣지 못합니다. 늘 열어 놓은 까닭은 잘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어떤 사람에게 말할 때는 그의 눈을 보고, 그가 말할 때에는 그 입을 보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사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보십시오. 이해 못할 리가 없습니다. 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도 들립니다. 켄 가이어는 '고통의 은혜'에서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돌 앞에서 잠잠히 서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다윗의 말에 귀기울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돌에게서도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이면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미국 사람들의 표현에 '거북이 크리스천'(turtle christian)이란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12일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개는 20일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습니다.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사는 크리스천이 거북이 크리스천입니다. 참다운 양식 없이 사는 크리스천을 거북이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 없이도 사는 크리스천은 거북이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크리스천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작은 소리까지 들리는 것은 크리스천의 행복입니다. 결론 출애굽기 4:29에는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을 모으고"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장로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모세에게 가장 든든한 협력자를 얻은 것입니다. 데일 도튼은 '타고난 보스'에서 타고는 보스는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직원이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스가 위대한 직원을 찾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장로들 있기에 출애굽의 인도자로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위대한 동지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회자와 당회가 똘똘 뭉쳐 교회를 이끌면 광야 길도 대로로 변합니다. 아무리 험하고 힘든 길이라도 하늘나라로 순탄하게 나갈 것입니다. "이 성회 하나 되어서 영광 길 행하세, 한없는 은혜 받아서 영원히 누리세" 찬송하며 온 교회가 하나되어 하늘나라로 향하는 이런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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